어떤 지역을 알아가는 데 인구와 언어, 지역의 넓이와 같은 수치가 말해주는 정보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역에 대한 보다 넓은 이해와 공감은 그 지역의 ‘문화’에서 온다. 그들이 현재에 안고 있는 고민과 실제의 ‘삶’은 그들의 문화 속에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8일(토) 홍대 앞 공간 민들레에서 중동의 평화를 바라며 중동 사람들의 삶과 공감하기 위한 첫 번째 월례마당 ‘타하눈’이 열렸다. ‘타하눈’은 아랍어로 ‘공감’이라는 뜻이다.
지난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부터 2003년 이라크 전쟁, 2006 레바논 침공 등을 통해 세계시민에게 ‘전쟁과 평화’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중동지역은, 하지만 여전히 세계 강국들 사이에서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재편되고 규정되고 있다. 중동을 자국의 이익과 관련된 문제로 보려는 인식은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동 전쟁에 관련해 한국 정부와 기업은 ‘평화재건’과 ‘국익’을 연계시키며 군사적, 경제적 개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03년 이라크 반전-평화활동을 함께 펼쳤던 활동가들로 구성된 평화활동공동체 ‘평화바닥’과 한국과 팔레스타인의 문화와 사람에 대한 이해를 통해 교류하고 함께 하려는 사람들의 모임인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에서 함께 마련한 ‘타하눈’은 ‘평화’의 관점에서 ‘문화’를 통해 그들의 삶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평화바닥’의 염창근 씨는 ‘타하눈’을 설명하면서 “중동의 문화를 통해 그들의 삶을 알아가는 자리를 통해 정치적이거나 경제적 관계로 얘기될 수 없는 이해의 근거들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의 김하운 씨 역시 “우리에게 지금 쏟아지고 있는 중동의 사망자 수나 전쟁의 이미지가 그들의 이해근거를 마련해주지 못하며, 그러한 시선은 평화적 시선도 아니다”며 “정치적 문제를 넘어 평화적 시선으로 그들의 문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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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하눈’ 첫 시간은 팔레스타인 출신인 아부 아사드 감독의 영화 <천국을 향하여>(원제 Paradise Now, 2005)와 함께 했다. |
‘타하눈’ 첫 시간은 팔레스타인 출신인 아부 아사드 감독의 영화 <천국을 향하여>(원제 Paradise Now, 2005)와 함께 했다. 자살폭탄 공격의 지시를 받은 두 청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천국을 향하여>는 지난 2005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3개 부문을 수상하고, 2006년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해 전 세계 영화인들의 관심을 받았다. 또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었다. 국내에는 지난 2005년 제10회 부산영화제에 소개됐었으며, 지난해 4월 개봉했었다.
하지만 ‘자살폭탄’에 대한 감독의 긍정적이지 않는 시선 때문에 팔레스타인에서는 ‘친이스라엘영화’로 인식돼 영화 제작진이 촬영도중 한 결사조직으로부터 위협을 받았으며, 이스라엘 정부의 영화기금을 받아 제작됐지만 감독이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이라는 점과 아랍어 영화라는 이유로 이스라엘에서도 상영되지 못했다.
영화는 다양한 각도로 팔레스타인의 현재를 기록한다. 이스라엘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그들의 압제와 차별정책, 절대적 빈곤 속에서 희망 없이 살아가는 팔레스타인들의 삶이 두 청년 ‘사이드’와 ‘할레드’를 통해 투영된다. 그러한 삶 속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은 그들의 몸을 던져 순교하는 일. 어느 날 저항군 조직으로부터 자살테러 공격을 지시받게 되고, ‘사이드’와 ‘할레드’는 신의 뜻으로 순교를 받아들인다.
“이런 지옥에 사느니 내 머릿속에 천국을 믿는 게 낳아”라고 말하는 할레드의 말에서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렇게 ‘사이드’와 ‘할레드’는 ‘천국’을 향해 길을 떠난다. 하지만 그 길 또한 쉽지 않다.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그들의 작전은 중단되고, 죽음을 눈 앞에 둔 48시간 동안 주인공들은 극심한 혼란과 마음의 갈등을 겪는다.
영화는 한 시간 반가량 상영됐다. 영화의 무게 탓인지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참 정적이 흘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는 한 참가자의 말처럼 영화는 절망적인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물론 계속 ‘진행형’인 현실은 이보다 나을 수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특히 팔레스타인 영웅의 딸이지만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이라는 윤리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수하’의 시각에 대한 의견들이 많았는데, ‘수하’의 시각은 ‘감독’의 시각과 겹쳐지기 때문이다. 극중에서 ‘수하’는 하니 아부 아사드 감독처럼 유학파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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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하눈' 첫 모임에서는 팔레스타인 영화를 함께 보기도 하고 팔레스타인의 과거와 오늘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 함께 나눴다. |
한 참가자는 “수하라는 인물이 비록 그 안에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팔레스타인보다는 외부자의 시선에 가깝다”며 “감독 역시 외부자의 시선인 수하를 통해 팔레스타인의 현실에 그 만큼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다른 참가자는 “영화 자체가 팔레스타인이나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했다기보다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가진 제3자를 향해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런 측면에서는 오히려 감독의 그런 시각이 외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에 평화봉사단으로 다녀왔다는 한 참가자는 “영화가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들이 많은데 특히 ‘필터’에 대한 광고나 대화 등은 인상적”이라며 “현재 팔레스타인들은 전기에서부터 물까지도 제한을 받고 있는데, 그들에게 왜 ‘필터’가 중요한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이날 모임에서는 ‘팔레스타인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정리해 내용을 참가자들과 나누었으며, 팔레스타인 현지 친구들을 통해 접한 최근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다음 모임은 8월 넷째 주 토요일에 진행되며, 팔레스타인 시인을 초청해 만나는 자리를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