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거 먹으러 가자!"
<채식속으로 Go!Go! 5편>
여옥
'뭐먹지?'
늘 하는 고민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에도 여러번 하는 고민이 아닐까 싶다. 특히 나처럼 메뉴 앞에서 유독 우유부단해지는 사람은 이거 먹자고 콕 찝어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채식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묻는다. 무얼 먹냐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메뉴의 결정권은 내게 넘어와버린다. 활동가는 평생 매순간 고민하며 살아야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런 고민은 나에겐 시련에 가깝다.
최근에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느라 외식을 하는 일이 잦았다. 밥사주겠다고 맛있는거 먹자는 사람은 내가 채식을 한다고 하면 당황한다. 고기만 안먹었다 뿐이지 음식가리지 않고 뭐든 잘먹는 내 식성을 이야기해도, 실제로 우리가 고를 수 있는 많은 메뉴 중에 극히 일부만 제외될 뿐이라고 설명해도 여전히 난감해한다. 덩달아 나도 난감해진다. 물론 밥사주겠다며 인심쓰듯 고깃집에 데리고 가는 것보다는 백번 낫지만, 배려를 넘어서서 걱정과 근심에 쌓인 상대방을 보면 얻어먹는 입장에서 참 미안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이왕 사주는거 적당히 메뉴도 골라주면 좋으련만, 내게 주어진 선택권 앞에서 나는 또 고민한다.
사실 되묻고 싶다. 평소에 사람들과 만나서 매번 고기를 먹으러 가는 것도 아닐텐데, 왜 고기를 안먹는다고 하면 메뉴를 고르지 못하는 걸까? 채식하는 사람들은 무얼 먹는지 정말로 궁금해하는 사람들 때문에 최근에 내가 사람들을 만나서 먹은 것들을 가만히 떠올려봤다. 냉면, 아구찜, 피자, 비빔밥, 콩국수, 커리, 스파게티...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채식식당을 간 것도 아니고 채식하는 사람들과 만났던 것도 아니다. 새벽 5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24시간 순대집의 술자리에서도 깍두기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고, 예전 삼겹살집에서의 회식에서는 상추에다가 밥을 먹고 있으니 내가 고기를 안먹는지조차 모르기도 했다. 조금 불편할 수는 있지만 언제어디서나 채식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끼니때마다 고기를 먹지 않으면 안되는 ‘육식’주의자(이런사람 실제로 있다!)도 아니면서 고기를 빼면 무얼 먹어야하는지 모르는건 왜일까. 오랜만에 만나는 손님에게 정성이 담긴 마음의 표시로 귀한음식 대접하는 것도 아니고, 옛날옛적 영양이 부족하던 시절처럼 외식할 때 고열량 고단백 음식으로 영양보충을 해줘야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광우병에다가 조류독감, 돼지 인플루엔자까지 등장한 마당에 생태, 평화 뭐 이런거까지 생각하기 전에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고기를 안먹는게 더 좋을텐데. 결국에는 다 연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 마음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준비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먹는 맛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글이기 때문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고, 사실 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아는 얘기인데다가, 특정한 식당을 홍보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된다. 하지만 채식을 한다고 해서 맛에 대한 욕구까지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싶을 때 가는 곳도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아직 가보지도 못한 꽤 많은 채식식당 리스트가 나온다.
인사동에는 채식음식점이 여러 곳 있다. 그 중에 <한과채>라는 밥집이 있다. 메뉴가 따로 있지는 않고 한약물로 지은 잡곡밥과 다양한 종류의 반찬이 많은 밥집이다. 죽과 전은 테이블로 직접 가져다주시고 나머지는 본인이 직접 가져다 먹는 뷔페식이다. 각종 나물, 직접 만든 도토리묵, 두부, 버섯볶음, 감자조림, 구운마늘, 겉절이 등 조미료를 쓰지 않은 반찬들은 맛이 강하지 않아 부담없고 재료의 신선한 맛이 잘 살아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비교할 만큼은 아니지만 샐러드와 각종 쌈야채도 있고 현미가래떡, 오미자차, 과일 등 웬만한 건 다 있다. 게다가 별로 질리지가 않아서 생각보다 많이 먹을 수 있다. 내가 갔을 때는 주인아저씨와 아줌마가 채식을 하냐고 물어보시더니 이것저것 설명도 해주시고 채식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가격은 1인당 1만원이고, 일요일은 쉰다.
멀지 않은 곳에 <오세계향>이 있다. 종교적인 색채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살짝 불편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슈프림마스터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메뉴도 다양하고 오신채와 무오신채가 구별되어 있다. 볶음우동, 버섯탕면, 채식짬뽕, 두개장, 들깨탕, 버섯탕 등 식사류도 있고 매실탕수, 누룽지탕, 단호박찜, 버섯전골 등의 요리류도 있다. 콩고기와 밀고기를 이용한 채식불구이덮밥, 채식불고기쌈밥, 콩까스정식은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할 정도다. 밑반찬도 여러 가지가 나오고 차도 나온다. 입구에서 채식빵과 채식조미료 등도 살 수 있다. 식사류 메뉴가 7-8천원 정도여서 싼 가격은 아니지만, 음식의 양도 많은 편이고 인사동의 다른 밥집들과 비교해보면 평균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외국인도 많고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도 많이 오신다.
얼마전 신촌 연대 앞에 생긴 <러빙헛>도 슈프림마스터에서 운영한다. 세계적인 체인점이고 한국에는 제주, 부산, 대전, 울산 등에도 있다고 한다. 패스트푸드점 느낌이 나는 밝은 분위기에 셀프서비스이지만 오세계향과 비슷한 메뉴를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버섯탕면은 오세계향 7천원, 러빙헛 2천9백원이고 콩까스는 오세계향 1만원, 러빙헛 4천5백원이다. 러빙헛이 가격부담이 없지만 조미료 맛이나 인스턴트의 느낌이 더 나고, 양이 조금 더 적다.
여의도역 근처에 있는 <신동양>도 유명하다. 예전 한겨레신문에 ‘스님들도 당당히 군침 흘리는 중국집’이라는 맛집으로 소개된 적이 있을 정도로 평소에 먹기 힘든 중국요리를 채식으로 즐길 수 있어서 채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곳이다. 채식이 아닌 일반 메뉴들도 꽤나 괜찮아서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함께 가기에 좋다. 일반메뉴판과 채식메뉴판이 따로 있고, 조리하는 과정에서 조리도구도 분리해서 사용한다고 한다. 일정 때문에 국회에 와야하는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신동양에 오곤 했다. 메뉴가 많아서 못먹어본 것이 더 많지만 탕수버섯, 고추잡채, 취피두부, 난자호박 등 요리류는 물론, 방금 만들어서 튀기는 채식군만두와 테이블에서 소스를 얹어주는 채식짜장, 채식짬뽕 모두 강력추천이다. 기회가 된다면 채식코스요리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식사류는 5-7천원 정도 하고 요리류는 2만원 이상이다.
채식을 하는 친구에게 밥을 사야할 일이 있다면, 뭐먹냐고 묻기 전에 먼저 고민을 하고 제안을 해보는건 어떨까. 의외로 친구를 감동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채식하는 친구에게 자신있게 얘기하자.
"오늘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
* 평화바닥 후원회원인 여옥님은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http://peaceground.org/zeroboard/zboard.php?id=ground&no=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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