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시선

[여옥] 채식, 그 쉽고도 험난한 길 <채식속으로 Go!Go! 1편>

평화바닥 2008. 5. 7. 04:43

채식, 그 쉽고도 험난한 길


여옥


“나 나가면 같이 채식하지 않을래?”
“응, 그러지 뭐.”
작년 11월.. 출소하면 같이 채식을 하자고 하던 친구의 권유에 따라 고기를 먹지 않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사실, 내게 채식은 그다지 대단한 결심은 아니었다. 내 주변에는 채식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심지어 같이 사는 룸메이트도 채식을 하고, 내 밥을 스스로 해먹다보니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하는 것은 정말 귀찮은 일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채식하는 내 친구들

사무실이 있는 아랫집에는 채식하는 친구들이 많다. 용석, 오리, 아침, 날맹, 가람, 돕.. 처음에 이들을 만나서 함께 밥을 먹을 때 너무 신기하게 물어봤던 것이 기억난다. 어렵지 않냐고. 그때 친구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채식은 생각할 때가 가장 어렵고, 실제로 해보면 어려울 것도 없어.” 이들은 채식을 하는 이유도 수준도 각각 다양하다. 나처럼 비육식을 하는 친구도 있고, 계란은 먹는데 해산물은 안먹는 친구도 있고, 우유를 안먹는 친구도 있고, 비육식으로 시작했다가 해산물까지 안먹게 된 친구도 있고.. 친구들마다 생각하는대로 하고싶은대로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랫집에서 함께 활동하는 친구들과 같이 지내며 밥먹을 일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따라 고기를 먹지 않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더 놀라웠던 것은 처음엔 어떻게 고기를 안먹고 살 수 있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 돌이켜 생각해보니 고기를 먹는 날보다 안먹는 날들이 훨씬 많았고 그게 더 자연스러웠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보면 어려울 것도 없어

채식하는 친구들에게 영향을 받아서 내가 먹는 밥상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는 내가 먹을 음식을 스스로 준비하고 조리하고 정리해야하는데, 그러다보면 아주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음식을 스스로 만들어 먹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식사를 하기 한참 전부터 미리 메뉴를 정하고 일부러 장을 보러 나가서 고기를 사와야하는 불편을 감수해야하는 일인데, 대부분의 식사 준비시간은 그리 여유롭지는 않기 때문이다. 된장을 풀고 냉장고에 있는 야채 몇 개 넣어서 금방 보글보글 끓여내는 된장국, 후라이팬에 노릇노릇 부쳐낸 두부, 김과 양념간장, 콩자반, 멸치볶음, 무말랭이, 김치.. 한상 가득 푸짐하게 차려서 배부르게 먹어도 부담이 없는 평범한 밥상의 풍경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기도 하고, 조리하기도 쉽다. 다시 살펴보면 고기가 없다. 사무실 근처 자주 가는 식당에서는 돌솥비빔밥, 김치찌개, 오므라이스 등 대부분의 메뉴에서 고기를 빼달라는 주문도 아주 익숙하다. (물론 제육덮밥이나 뚝배기불고기는 안된다^^;)

불편한건 음식이 아니라 시선

피할 수 없는 회식자리, 고기집. 음식도 음식이지만 온갖 질문과 시선이 더 불편하다.채식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이미 채식을 하고 있는 많은 친구들 덕분에 큰 어려움도 없지만, 막상 이 공간을 벗어나 다른 친구들을 만나고 다른 일을 해야할 때는 종종 여러 어려움에 부딪힌다. 아직 채식을 하는 사람이 소수인 사회에서 채식을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몹시 궁금해한다. 내가 처음에 채식하는 친구들을 만났을 때처럼 말이다. 그리고 많은 관심을 보이며 그럼 뭘 먹냐면서 영양상의 문제를 걱정해주기도 하고,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없는데 일부러 그럴 필요까지 있냐며 설득하기도 하고, 비싼 고기를 사주겠다며 꼬시기도 한다. 치킨에 소주를 최고의 궁합이라 여기는 술친구들과의 만남은 예전과 같을리 없고, 고기를 빼달라는 주문에 인상을 찌푸리며 안된다는 식당을 만났을 때는 그냥 대충 먹고싶은 생각도 든다. 특히 회식으로 고기집을 갈 때는 난감하다. 많은 사람들은 나의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해주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식사를 하거나 술자리를 할 때면 매번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인정받기란 상당히 불편한 일이고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앞서 얘기했듯이 채식을 하면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닌데, 내가 채식을 한다는 이유로 쏟아지는 시선과 질문을 견뎌내는 것이 가장 어렵다.

평화가 과정인 것처럼
버섯볶음, 도토리묵, 브로콜리, 도라지무침, 샐러드, 고구마맛탕, 마늘조림, 부침개, 쌈야채 등 유기농 채식반찬이 가득한 인사동의 한 밥집에서.
그런 불편에도 불구하고 내가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솔직히 말하면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병역거부자들에게 병역거부한 이유를 물으면 딱 잘라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처럼, 어떻게 정리해서 설명해야할지 어떤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꺼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서 더더욱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고 있는 나의 평화적 감수성과 육식이 충돌하는 지점에 대해서,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먹는 음식들이 어떻게 길러지고 가공되어 우리에게로 오는지, 채식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들도 풀어보고 싶고...
채식을 생각한지도 시작한지도 얼마 되지 않은 완전초짜 채식주의자가 살아가는 일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채식의 과정을 나누고 싶다. 평화가 과정인 것처럼.


* 후원회원이신 여옥님은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