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시선

[여옥] 내가 안먹은 고기가 음식쓰레기로?! <채식속으로 Go!Go! 2편>

평화바닥 2008. 6. 14. 18:31

 

내가 안먹은 고기가 음식쓰레기로?! <채식속으로 Go!Go! 2편>

여옥



대학교 때 농활은 내게 새로운 체험이었다. 모든 생명 안에 깃들어 있는 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고, 내 앞에 있는 음식들이 거쳐온 수많은 정성과 노력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햄버거를 먹지 않기로 결심하다

나름 착실하고 열심히 교육에 참여해서 선배들의 이쁨을 받았던 새내기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접해보지 못했던 정치적이고 낯선 이야기들을 모두 받아들이기엔 조금 벅찼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도 5년간 농활을 다녀오는 바람에 정확히 그때 뭐가 핵심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다국적 기업과 음식문화에 대한 내용에서 패스트푸드의 문제점에 대해 강조했었다. 해단식 날 서울로 돌아오던 길에 한 동기녀석이 어떻게 햄버거를 안먹고 살 수가 있냐는 얘기를 했고, 농활에서 제대로 삘받았던 나는 그 얘기에 발끈하여 한참을 티격태격했다. 그 녀석은 나의 끈질긴 설득에도 불구하고 안좋다는건 알겠지만 남들도 다 먹는데 뭐가 달라지며 반박했고, 나는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안좋은걸 알면서도 먹는게 더 나쁜 거라면서 우리부터 안먹으면 되지 않냐고 설득하려고 무지 애를 썼다. 마침내 그 친구가 정색을 하며 내게 물었다. “그럼 넌 진짜 햄버거 안먹을 수 있어?” “응” 그 이후로 난 진짜 햄버거를 먹지 않았다. 예전엔 길들여진 입맛 때문에 종종 먹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먹고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누가 줘도 안먹을거다.
<사진 - 다년간의 농활 경험은 내 삶의 방식을 많이 바꾸어놓았다.>

음식을 남기는 것은 너무 미안한 일

몇 년간 농활을 꾸준히 다녀오며 스스로 꼭 지켜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있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쉽게만 생각했던 내 밥상 앞의 음식들이 내가 지불한 돈 몇푼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가치들이 담겨있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씨앗 하나가 싹을 틔워 자라나기까지 보듬어 키우는 땅, 적당한 햇볕, 비도 필요한 시기에 알맞게 내려줘야 하고.. 잡초를 뽑아주고 흙을 북돋아주고 가물 때 물을 주고 벌레도 잡아주고 지지대도 세워주어야 하는 농부의 마음이 담긴 노동, 가장 알맞게 자랐을 때 거두어진 작물을 시장까지 운반해주는 사람, 시장에서 거치게 되는 상인의 손, 그걸 사서 정성을 담아 요리하는 손까지.
아무리 내가 능력이 뛰어나도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 수많은 존재들의 노력과 도움으로 여기까지 온, 그런 음식을 버린다는 것은 그 안에 담겨진 노력과 정성을 저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틱낫한 스님이 그러셨던가? 종이 안에 구름이생명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 텃밭에서 무에 북을 주는 모습.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구름 없이는 물이 없고, 물 없이는 나무가 자랄 수 없으며, 나무 없이는 종이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음식 안에 담겨있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음식을 남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즘도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엄청난 음식쓰레기와 지구 한편에서는 여전히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불평등을 생각한다면, 음식을 남기는 것은 더더욱 미안한 일이다.
<사진 - 생명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 텃밭에서 무에 북을 주는 모습.>

내가 안먹은 고기가 쓰레기로

하지만 채식을 하게 되면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나는 더 이상 고기를 먹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내가 먹어야하는 음식에 고기가 들어있는 경우가 있다. 아직 채식이 보편적이지 않기도 하고 개인의 취향을 하나하나 고려하여 음식을 만들기에는 음식점의 상황이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고기를 빼줄 수 있다는 메뉴에서 특별히 부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깜빡잊고 조리를 해주는 경우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마주하게 될 때가 종종 생긴다. 그럴 때 참 난감하다.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감사히(?) 먹어야 하는 거라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고기를 먹지 않기로 한 이상 그냥 먹을 수는 없는 일! 고기를 못먹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 같은 경우는 음식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고 최대한 고기를 골라내고 먹는다. 이런 식으로라도 자꾸 요구하고 자꾸 표현해야 고기사용량이 줄어들테고, 먹기 위해 길러지는 동물이 줄어들게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불편하더라도 일부러 고기를 꼼꼼하게 골라내어 잘 보이게 두곤 한다. 하지만 골라내진 고기는 음식쓰레기가 되는 셈이다. 내가 음식쓰레기를 만들어야한다니.. 내가 원한건 이런게 아니었는데 스스로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상황이 너무 싫었다.

먹기 위해 키워지고 죽임을 당하고도 결국엔 쓰레기가 되어버린 고기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어디선가 밥을 굶고 있는 어떤 아이에게는 아주 귀한 음식일수도 있는데.. 하지만 세계 곡물생산량의 약 30-40%는 오로지 먹기 위한 동물을 키우는데 사용되고, 그 동물들을 키우기 위해 열대우림의 50%를 불태우고 있으며 축산동물의 분뇨가 심각한 오염을 야기한다고 한다. 그리고 유전자 조작된 사료와 농약, 제초제를 뿌린 풀을 먹고 자란 동물의 몸에 쌓인 오염물질과 좁은 공간에 갇혀서 몸집을 키우기 위해 하루종일 먹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동물들이 병에 걸리지 않고 자라도록 동물의 몸에 투여된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는 그 고기를 먹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최소비용으로 단기간에 고기를 생산하려는 육식산업은 많은 문제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고통을 느끼는 생명을 오로지 먹기위해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키우고 죽이는 것이 보편화된 구조, 육식산업이 가진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런 구조에 가담하지 않는 것, 즉 나부터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다.

더 나은 채식을 위하여

결국 나의 고민은 더 많은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나왔다. 음식을 남기는 것과 고기를 먹지 않는 것, 어느 것이 우선일수는 없지 않을까? 가장 필요한 것은 이런 고민들을 실천으로 이어가기 위한 노력일거다. 채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육식보다 좋기만 한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고기대신 먹는 자주 먹는 음식들만 봐도 그렇다. 발아촉진제 먹고 통통하게 자란 콩나물, 농약 덕분에 벌레없이 깨끗한 배추, 유전자조작된 콩으로 만든 된장과 두부, 표백처리와 방부처리된 흰 밀가루로 만든 부침개.. 어떻게 먹는 것이 나에게도, 다른 생명에게도 더 좋은 건지 늘 고민할 수밖에 없다. 더나은 채식을 하기 위한 고민은 계속된다. 쭈욱-


* 후원회원이신 여옥님은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http://peaceground.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