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시선

[희깅] 내 가족이 동성애자라면?

평화바닥 2008. 5. 7. 04:45

내 가족이 동성애자라면?
- [재미난 집 - 어느 가족의 기묘한 이야기] 를 읽고


희깅


퀴어의 아이들

올해 4월 초, 제10회 국제서울여성영화제에서 여러 편의 영화를 봤다. 2~3분정도 되는 단편부터 2시간짜리 다큐멘터리까지 다양한 영화를 접했다. 한국이라는 좁은 사회에서 편협한 시각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라는 반성도 있었고,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일들에 대해 깨우치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관심 있게 본 영화들 중에 미국 동성애자 가정의 아이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퀴어스폰 : 퀴어의 아이들>이 있다.

‘퀴어 스폰(Queer Spawn)’은 동성애자 가정에서 성장해서 자란 아이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이다. 영화는 10대 아이들이 ‘우리 집은 아빠가 두 명이 있다’ ‘우리 집은 엄마가 둘이 있는데, 두 분이 헤어지고 지금은 엄마의 다른 파트너와 함께 살고 있다’는 인터뷰로 시작한다. 그리고 감독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이렇게 입양된 아이는 천만명이 넘고, 이것은 뉴욕시의 인구보다도 많다.”

어쨌든 이들은 1년에 한번 모여 축제를 열고, 동성애자 부모를 둔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동질감을 느낀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지만 그것이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부모의 다름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그것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일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친구들이 너도 동성애자냐고 물을 때, 아이들은 퀴어 가정에서 자란다고 해서 퀴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 이성애자 부모를 둔 집안에서 자란 자녀가 동성애자일 확률과 동성애자 부모를 둔 집안에서 자란 자녀가 동성애자일 확률이 비슷하다고 한다.

그런데, 반대로 평범한 집에서 자란 아이가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했다면 그 부모의 반응은 어떨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비슷한 것을 상상하고 있지는 않을까. ‘다리몽둥이 부러진다’ 류의…. 그런데 자식의 커밍아웃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사실 ‘나는 게이야’라고 커밍아웃한다면? 그리고 어머니가 “너마저 그래야 하냐”고 원망한다면? 우리 집에서 자신을 돌보던 친한 오빠가 사실은 아버지의 애인이었다면? <재미난 집- 어느 가족의 기묘한 이야기>은 동성애자 저자의 자전적 만화이자, 동성애자였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레즈비언 여성만화가의 자서전, 재미난 집

작가 앨리슨 벡델은 여성 동성애자, 즉 레즈비언 만화가이다. 20년동안 50여개의 신문에 <주목해야 할 레즈들 DYKES TO WATCH OUT FOR>이라는 만화로 알려져 있다. 미국 내 페미니즘 관련 논의에서 그녀는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10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를 바탕으로 자서전을 펴냈다. 만화 자서전이라는 독특한 소재가 뿐만 아니라, 딸과 아버지의 관계 혹은 아버지의 숨겨진 성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재미난 집, 원제 ‘Fun Home’는 작가의 집을 의미하는 중의적 표현이다. 저자의 아버지는 장의사였고, 아버지가 일하는 공간인 장례를 준비하는 곳, ‘Funeral Home’을 줄여 ‘Fun Home’이라고 불렀는데, 이 책에서의 ‘Fun Home’은 빅토리아식 인테리어를 떠올리는 그녀의 집, 완벽함을 추구하는 가족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는 가족 간의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는 대학에 입학하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부모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린다. 자신의 우려와 달리, 어머니에게 온 답신은 그녀에게 의문을 남긴다. 자신의 아버지가 게이이고, 그것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어머니, 그리고 그 때는 자신의 정체성을 솔직히 밝히기 힘들었다는 아버지의 고백은 그녀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어난 아버지의 죽음은 우연에 의한 사고인지, 의도된 자살인지 식구들에게 궁금증을 안겨주지만 풀리지 않는 숙제다.

<재미난 집>은 그녀의 자세한 설명과 그림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작가는 마지막 장까지 유머러스한 상황을 절제된 문체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작가가 편하게 자신의 가족사를 이야기 하고 있는 듯하지만, 읽는 이에게 끊임없는 긴장감을 가져다주는 이유이다. 그리고 어느새 독자 자신들의 가족을 돌아보게 한다. 재미난 집의 중심에는 ‘동성애’ 코드가 있지만, 재미난 집에서 보이는 가족 간의 모습은 가족 일반에 대한 성찰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앨리슨 벡델의 <재미난 집>은 2006년 출판되자마자 타임과 뉴욕매거진에서 ‘올해의 최고도서’와 전미 비평가 상 최고작, 미국 최우수 만화로 선정됐다.


[재미난 집 - 어느 가족의 기묘한 이야기]
앨리슨 벡델 (지은이), 김인숙 (옮긴이) | 글논그림밭



* 이 글은 <프로메테우스4U>에도 실린 글입니다.
* 회원이신 희깅님은 <프로메테우스>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