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시선

[하운] 나는 평화주의자가 아닙니다

평화바닥 2009. 1. 23. 02:46


나는 평화주의자가 아닙니다


하운


나처럼 회의가 가득한 사람들은
평화주의자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나 역시, 평화주의자 따위는 되고 싶지도 않다.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얻어맞거나 죽어간다는 이유로 '선'의 편에 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그들이 얻어맞거나 죽는 걸 멈추는 것이 곧 평화를 의미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슬로에 있는 가자 출신의 팔레스타인 지인이
메일을 보내왔다.
그 안에는 죽어가는, 또는 이미 죽은 팔레스타인 인들의 사진이 가득했다.
난 그만큼은 절대 못하겠지만
세상의 가장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 분노했다.
또 슬펐다.
잊고 있던 제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매번 이렇게 이슈가 될때마다 죽어 널부러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싶지는 않다.
그들의 죽은 모습, 죽었다는 사실, 그게 몇명인지 매번 업데이트되는 숫자,
그리고 하마스와 이스라엘과 이 전쟁, 아니 이 학살의 원인과 상황분석에 대한 정보들도 좋다.
다 좋다.
다 좋고, 아마도 그게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 널부러진 사람들의 살아있었을 적 모습을 보고 싶다.
내가 듣고 싶은 건, 그들이 그렇게 죽기까지 살아온 이야기다.

한둘이 아닌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길 이름이 무엇인지
그 가족들은 주말에 모여 무엇을 했을지
또 하루하루 어떻게 버텨갔을지.
오렌지가 유명하다던 가자의 과일 시장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오랜, 말도 안되는 봉쇄기간 동안 그 시장이 어떻게 변해갔을지.
..또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사람들이 거닐고 아이들이 뛰노는 평범한 사진 하나 찾기 힘든 팔레스타인의 '가자'.
포털 사이트에는 매번, 폭격 맞고 데모 하고 장례식을 치루고 죽어가는 가자 사람들의 사진들 뿐이었다.
우리 눈의 촛점이 향해 있는 곳.
그곳은 가자의 삶이 아니라 가자의 죽음이었다.
가자 사람들의 삶은 정말로 봉쇄돼고 잊혀져버린 듯 하다.


가자에서 나고 자란 한 지인은
그림 그리는 것이 취미였다.
그가 타준 비싼 커피가, 내가 마셔본 커피 중에서는 가장 맛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처음 만나면
서른 살, 그 시간 그의 삶을 묻기 전에 하마스를 먼저 물어본다.
뭐 그 둘은 연관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엄연히 다르다.
보는 자가 보내는 시선의 각도가 다르다.

가자 사람들이 살아서 쥐어짜여 메말라가고 있을 때는 시간이 그들을 잊었었는데
그들이 죽자, 그것도 한꺼번에 여럿이 죽자 세상이 비로소 그들을 다시금 돌아보았다.
그들은 죽어서 우리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
'정상'이란 게, '당연'이란 게,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란 게 무엇인지
그들이 살아서 외칠 때는, 그렇게 버텨보려고 애쓸 때는 귀가 먹먹하더니
그 처절한 애씀이 끝나고 쉽게 삶을 놓아버리자.
비로소 내 귀가 다시 열렸다.
그리고 소리들이 들린다, '들어라, 팔레스타인의 목소리를'이라는.
되돌이표 음악 같은 소리들.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얻어맞거나 죽어간다는 이유로 '선'의 편에 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그들이 얻어맞거나 죽는 걸 멈추는 것이 곧 평화를 의미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을 패고 죽이는 쪽이 '악'의 편에 있다는 것은 확신한다.
그들이 패고 죽이는 것을 막는 것이
평화, 아니 삶의 가장 인간적인 부분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침공을 멈춰라.
학살을 멈춰라.
난 진심으로 신이 있고 심판이 있어
우리 모두 지옥에서 제정신이 들길 바란다.
그리고 바로 그게 지금이 아니길
진실로 바란다.


2009년 1월 7일


* 평화바닥 후원회원인 김하운님은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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