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시선

[임유진] 좋은 글에 대한 소소한 견해

평화바닥 2009. 10. 21. 21:18

좋은 글에 대한 소소한 견해


임유진





지갑 속에 잃어버리지 않도록 넣고 다니는 게 하나 있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는 날, 학교에 오지 못하신 할머니가 엄마 아빠 손에 들려보내신 편지입니다. 어려서부터 직접 밥해 먹이시면서 키워낸 손녀딸이 대학 졸업을 하는데 와보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에 쓰신 편지였겠지요. 봉투에는 “할머니가 유진개”라고 쓰여 있습니다. “유진에게”를 쓰려고 하셨을 겁니다. 봉투의 글씨를 보면서 저는 픽,하고 웃음을 터뜨렸지만 저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제가 또 눈물이 지나치게 헤픈 여자라..-_-). 철자법은 엉망이었고, 아니 이게 뭐람, 끝인사도 없이 끝나 버리는 편지글이었지만 저는 그걸 읽고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그리고 저는 아직도 이 편지를 볼 때마다 늘 웁니다).

사랑하는 유진게
진심으로 졸업을 축하한다.
너에게 당부한다. 16년간 공부 여심이 해왇고 아빠엄마 바침 덕분에 공부를 마치게 되엳짝니. 압으로는 이 널븐 세상 길을 걸어야 할 시기니 깁이 생각하여 걸어가길 바란다. 너의 아빠도 몸이 늘 건강치 안으니 너라도 갑상선으로 압으다 하니 치료 열히 받고 건강 챙기기 바란다.
우리 유진 사광모자 쓰고 졸업식하는 걸 몯보아 마음이 안졷하.


맞춤법이 엉망이죠?^^;; 일상에서 한글로 소통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무학이신 저희 할머니는 철자법을 잘 모르십니다. 평소에 글을 쓰시는 것도 “나 노인정 갇다오마” 정도가 다죠. 이 정도의 긴 글을, 할머니는 써보신 적이 거의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글을 보고 제가 지금껏 읽었던 그 어떤 글에서보다 더 많은 감동을 느꼈고, 더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사광모자”―사각모자―부분에서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지만 말이죠). 저의 졸업식을 보지 못해서 정말로 마음이 좋지 않은 할머니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졌달까요. 진짜 좋은 글이란 화려한 수사로 꾸미지 않아도 이렇게 진심이 전달되는 글이 아닐까, 하고 저는 할머니의 편지를 보면서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진심을 담아서 정직하게 쓰면 읽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저 나름으로는 좋은 글이란 어떤 글인가에 대한 소소한 의견을 갖게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소설가 이만교 선생님의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는 ‘좋은 글이란 어떤 글인가’에 대한 상식을 바꾸고, 글쓰기를 원점에서부터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한 문장이라도 살아서 반짝이는 문장이 좋다고 말하는 책, 솔직하고 정직하게 나를 돌아보고, 내면을 살피는 글을 쓰라고 말하는 책. 무조건 멋진 글을 써내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애초에 왜 글을 쓰고 싶어 했던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 그래서 글쓰기를 본질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첫 문장부터 다시 쓰게 만드는 책.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의 글쓰기를 혁명하고, 우리의 삶까지도 바꾸어 낼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그런 글쓰기 책이죠. 좀 거창한가요-_-?

사실, 맨 처음 이만교 선생님의 글쓰기 책 원고를 처음 접하고 저는 살짝 전율했었습니다. 이만교 선생님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이미 글쓰기 강의로 이름을 떨치고 계셨지만, 글쓰기 책을 꽤 많이 읽어본 자로서, 그리고 거의 모든 글쓰기 책에 전부 실망을 했던 자로서, ‘글쓰기 책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에 별 기대 없이 읽었는데, 놀랍게도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는 제가 지금껏 봐왔던 그 어느 글쓰기 책과도 달랐고, 그리하여 마침내 저는 원고를 다 읽고 난 후에, 감히 나도 글쓰기를 잘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어떨 때는 글로 진심을 전하기보다는 멋을 부리고, 다른 사람한테 두루 읽히기 위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자 했던 제 자신을 반성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하면 너무 교훈적이지만 어쨌거나. 아 그러니까, “글쓰기는 이런 마음으로 하는 것이구나” 내지는 “좋은 글쓰기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깨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는 해도 사실 정말로 깨쳤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후후.

확실한 건, 무릇 글이란 것은 나의 삶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며, 따라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나의 삶에 치열해져야 함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치열한 삶으로부터 나오는 진심이 담긴 좋은 글은 읽는 이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게 진심, 혹은 전심에서 나오는 글이, 진짜 살아서 반짝이는 글이고, 진정 좋은 글입니다. 또한 글솜씨가 있고 없고를 떠나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글쓰기입니다. 글쓰기는 결코 소수의 영역이 아니며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고민이 있을 때, 갈등이 될 때 그걸 풀어나가는 삶의 훈련으로서 꼭 필요한 필수요소인 것입니다.

믿으실지 안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예전같았으면 엉망인 철자법 때문에 부끄럽다고, 혹은 웃기다고 생각했을 할머니의 편지글을 두고 참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준 이 책,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가 저는 참 좋습니다. 적당한 수사와 참신한 소재, 그리고 매끄러운 글솜씨를 가지고 좋은 글이냐 아니냐를 판단했던 저의 미욱함을 깰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어서 또한 고맙습니다. 그리고 또 저는 확신합니다. 글쓰기는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갈 엄마들, 아빠들, 회사원들, 백수들, 노인들 모두에게 이 책이, 글쓰기를 자기 자신의 치열하고 직접적인 문제로, 즉 삶의 문제로 생각하게 만들어 줄 것임을 말입니다.

소설가 이만교 선생님이 말하는 글쓰기 공작(共作)이란 그렇게 우리가 함께[公] 써나가는[作] 글쓰기를 말합니다. 우리의 글은 모두 좋은 글일 수 있습니다.




* 평화바닥 후원회원인 임유진님은 <도서출판 그린비>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도서출판 그린비>의 블로그(http://greenbee.co.kr/blog/)에 포스팅된 것입니다. http://greenbee.co.kr/blog/613?category=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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