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시선

[임유진] 학살을 기억하라 - 역사 속에 가려진 자들

평화바닥 2011. 1. 21. 13:09

학살을 기억하라 - 역사 속에 가려진 자들

임유진



“2001년 2월 중부 칼리만탄의 항구도시인 삼핏에서는 이주민인 마두라족에 대한 다약족의 대대적인 무차별 학살이 벌어졌다. 다약족의 전통에 따라 살해된 자들은 목이 잘렸다. 잘린 목이 거리에 굴러다녔으며 학살극의 장본인인 다약 행동대의 본부 격인 삼핏의 리마 호텔 마당에는 잘린 마두라족의 목들이 80여 개나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유재현, 『아시아의 오늘을 걷다』, 58쪽)

<유재현의 온더로드>시리즈 네번째 책인 『아시아의 오늘을 걷다』는 소설가 유재현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네팔 등 아시아 10개국을 돌아다니며 아시아 인민의 삶과 정치의 현장을 발로 뛰며 쓴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재의 자리를 대신한 민주주의와 선거함은 결국 아시아의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음을, 그리고 아시아 인민들은 그 민주화의 이름 속에 그저 난민화되고 있을 뿐임을 고발하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인종학살의 그늘에 대해서 서늘하게 묘사하고 있는 부분은 쥘 베른이 그의 인도 여행기 『쥘 베른의 갠지스 강』에서 19세기 당시 식민지 인도의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것과 통하는 지점이 있다. 19세기 영국 동인도회사에 고용된 인도인 병사들(세포이들)이 영국의 인도지배에 저항하여 일으킨 반란인 세포이 항쟁. 그리고 여기서 아내를 잃은 먼로 대령. 그가 떠올리는 학살의 현장은 그야말로 도살장과도 같았다.


세포이 항쟁은 '세포이 반란'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영국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으로 인도측에서는 이 사건을 '제 1차 독립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여자들과 아이들로 이루어진 군중이 남아 있었는데…… 인도 용병의 6연대에 소속된 소대는 비비 가르의 창문들을 통해 사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잔인한 왕자는 자신의 호위병들 속에 회교 백정들을 섞어 넣었답니다. 그야말로 도살장 같은 학살이었습니다!” (『쥘 베른의 갠지스 강』, 118쪽)

먼로 대령의 아내와 200여 명의 유럽인들이 학살당한 도시의 추모 장소를 방문한 ‘강철거인’ 일행들이 “콘포르를 기억하라”는 문구를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는 쥘 베른의 여행기. 여기서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하는 것은 비단 ‘콘포르’뿐만이 아닐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도살’에 가까운 학살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을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아픔. 그 죽음들을 기억할 때 비로소 우리는 100년이 지나도, 200년이 지나도 동일한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유재현은 말한다. “인종주의는 신기루와 같다. 존재하지 않지만 필요한 자들이 엮어 만들어 다중을 현혹시킨다. 언제나 목적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결과가 학살로 치닫을 만큼 참혹하다는 점에서 최악의 범죄이다”라고. 그러나 신기루와 같은 것이 어디 인종주의뿐이랴!



* 평화바닥 후원회원인 임유진님은 <도서출판 그린비>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도서출판 그린비>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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