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시선

[여옥]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전쟁에 대한 물음

평화바닥 2011. 1. 21. 12:56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전쟁에 대한 물음


여옥





올해는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이와 관련해 전쟁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많이 준비되고 또 진행되고 있다. 각 방송사에서는 다큐, 드라마 등 특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전쟁기념관을 비롯한 각종 박물관에서는 특별기획전이 열리며,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국 곳곳에서 음악회와 페스티벌이 열린다. 가장 열심히 행사를 준비하는 것은 정부이지만 민간인 학살의 현장을 방문하는 평화기행이나 학술행사 등 민간에서 주최하는 행사 역시 다양하다. 한국전쟁이 멈춘지는 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전쟁의 기억은 한국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쟁을 기억하고 기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기억은 과거의 경험을 회상하는 것이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치적이다. 더 나아가 기억의 공적인 작업인 기념은 더더욱 그러하다. 국가 주도로 이루어지는 전쟁기념사업들의 취지와 목적을 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는 '전란을 극복하고 정치․경제 발전을 이룬 자랑스런 역사를 평화 지향의 선진일류국가 비전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라고 기념사업의 취지를 설명1)한다. 군부대 병영체험을 통해 '한국전쟁 60주년을 되새기고 올바른 국가관과 애국정신을 함양'하고, '6․25전쟁에 대한 왜곡된 안보의식을 바로잡고, 미국 등 참전국에 대한 감사를 표출'하기 위해 특별기획전을 연다. 전쟁기념은 현재의 삶이 전사자들의 고귀한 희생에 기반하고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국민을 분열에서 통합으로 이끄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해왔다. 전쟁에서 기념되는 것은 대부분 군인들의 조국을 위한 희생, 충성심, 영웅화가 중심이다. 국가를 위한 고결한 희생이라는 관점에서는 왜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국가를 지켜야하는지, 그렇게 지켜야하는 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과 논쟁은 삭제되고 국가는 무조건 지켜야 하는 대상이 된다. '우리'의 반대편에 있는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고 선과 악의 이분법을 적용해 '국가'라는 운명공동체가 형성된다. 동일한 국가정체성을 강요, 훈육하고 여기서 벗어나면 비정상, 비국민, 반동분자, 빨갱이가 된다. '우리'와 적을 구분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 들어맞지 않는 다른 경험과 기억은 침묵을 강요당한다.

전쟁을 일으킨 정치가와 전쟁을 수행한 군인과 전쟁을 겪은 일반시민 각각의 개인이 기억하는 전쟁은 같은 전쟁일까? 같은 한국전쟁을 경험했지만 지역에 따라 성별에 따라 세대에 따라 각각 다른 기억이 존재할 것이다. 인천상륙작전 재연 행사와 경남 함안지역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2)에서 기억하는 전쟁은 같은 전쟁일까? '기억과 계승'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되는 인천상륙작전 재연행사를 비롯한 여러 전투기념 행사들는 정부 주도의 한국전쟁 60주년 기념사업의 일부이다. 정부 주도의 행사에서 기억하는 것은 '참전용사의 희생'이다. 전쟁의 기억은 정치적 사회적인 관계의 충돌 속에서 선택되고 다듬어진 일부이다. 국가와 전쟁기억의 주체들은 전사자들의 '희생'을 부각시켜 그들의 죽음을 애도한다. 반면 전사자가 아닌 다른 희생자들의 죽음은 주변화되었다. 국가에 의해 동원된 이들의 죽음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전쟁은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되는 부조리한 폭력이 아니라 정당한 무엇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처는 기억하지 못한다. 적군의 공격과 반인권적인 전투 속에 '우리'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기억 속에서 '우리' 편인 군인이 민간인을 학살했을 리가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진실은 영웅을 범죄자로 만들 수도 있다. 그렇게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수많은 민간인들은 기억되기조차 힘들다. 침묵과 외면과 배제을 통해 민간인 학살의 희생자들에게 또다른 희생을 강요해 왔던 것이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그동안 억압당했던 전쟁의 상처와 기억들이 공론화되기는 했지만 제대로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직도 먼 이야기이다.

“잊지말자 625”라는 구호 속에는 한국전쟁을 일으킨 북한에 대한 원망이 느껴진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탱크 한 대 없던 남한에 북한이 갑자기 쳐들어와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집중하면 할수록, 공산주의 북한은 악이고 자유주의 남한은 선이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생겨난다. 그리고 '우리'는 북한이 일으킨 전쟁에서 '피해자'가 된다. 전쟁의 원인은 북한이고 북한만 없으면 평화로울 것 같다. 나쁜 놈만 처치하면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처럼 단순한 생각이 있을까? 악을 저지르는 행위자와 그에 따른 희생자가 명확히 나눠질 수 없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단편적인 인과관계로 정의내릴 수 없는 상황. 그게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국가권력에 의해 동원된 군인들은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이다. 상부의 명령에 따라야하고 살기 위해 죽여야 하고 동료의 죽음에 복수해야한다. 살기위해 낮에는 태극기를 밤에는 인공기를 들어야했던 마을 사람들에게는 어느 쪽이 우리 편이었을까. 오로지 상대방에게 전쟁의 책임을 떠넘긴 이러한 전쟁 기억 속에서는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된 부조리한 폭력에 대한 성찰이나 반전과 평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끼어들 자리를 잃는다.

전쟁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전쟁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보다는 전쟁에 대한 폭력과 공포의 기억을 강화함으로써 안보 및 전시체제에 대한 정당성을 얻고 강도 높은 사회통제를 수행해 왔던 한국 사회는 '평화'를 위해 군대의 규모를 늘리고 무기를 사들이고 있다. 엄청난 돈을 국방비로 쏟아부었지만 정작 갈등과 대치국면에서는 별다른 능력을 발휘하지도 못한다. 전쟁이 났을 때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 준비하는 것은 정작 전쟁을 막아내지 못한다. 오히려 끝없는 군비경쟁과 군사적 긴장감을 불러일으켜 전쟁의 원인이 될 뿐이다. 한국전쟁 60년을 기념하여 모두들 전쟁은 안된다고 말하지만, 전쟁을 막기 위해 더 강한 안보태세와 국방력이 필요하다는 주장 속에 유보되는 가치들은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모두들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같은 평화가 아니다.

기억은 정치적인 것이다. 단순히 과거를 그대로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재의 기준으로 재평가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하는 전쟁은 어떤 모습인지, 과거의 기억이 현재에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기념할 것인지는 물음은 계속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억의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 각주
1)  2009년 8월 공식 출범한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홈페이지 http://www.koreanwar60.go.kr
2)  오마이뉴스, 2010. 6. 30. <함안 유가족 "영혼이여, 전쟁도 아픔도 없는 곳으로">


* 참고한 자료들
후지와라 기이치 지음, 이숙종 옮김, <전쟁을 기억한다>, 일조각, 2003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기획, 전진성․이재원 엮음, <전쟁과 기억>, 휴머니스트, 2009.
역사문제연구소 엮음, <한국전쟁에 대한 11가지 시선>, 역사비평사, 2010.
나은진, <전쟁의 역사화 방식과 공유기억의 문화적 재생산>, 한국문화연구 13호, 2007
여문환, <동아시아 전쟁기억의 정치와 국가정체성>,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2008


* 평화바닥 후원회원인 여옥님은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http://www.withoutwar.org/)의 소식지 28호에 실려 있습니다. http://www.withoutwar.org/bbs/zboard.php?id=www_letter

* http://peaceground.org/zeroboard/zboard.php?id=ground&no=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