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시선

[성주] 폭력적인 군대문화, 나도 가해자였다

평화바닥 2007. 9. 22. 02:00
폭력적인 군대문화, 나도 가해자였다


성주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이 글을 써야 한다고, 이 글을 쓰고 싶다고. 평소 군사 문화를 비판해왔던 나는, 언제부턴가 나의 목소리가 매우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군을 제대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니는, 일종의 어두운 그림자와 같은 것. 언젠가는 꼭 글로 풀어내고 싶었던 나의 그림자였다. 부끄럽지만, 이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바로, 나도 가해자였다는.

“나도 네가 싫어”

그는 약간 큰 키에 마른 체격이었다. 목소리에 힘이 별로 없었고, 전체적으로 왠지 여리다는 느낌을 주었다. (‘군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뭔가 부족해 보이고,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그는 선임병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병사였다.

어느 날 아침, 아마도 그가 무슨 문제를 일으켰던 것 같다. 그에게 공개적인 꾸지람이 쏟아졌고 그는 분명 괴로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청소를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우연히 나는 그와 짝을 이루어 청소를 하게 되었다. 그보다 계급이 높았던 나는 빗자루를 들었고, 나보다 계급이 낮은 그는 마대자루를 들었다. 내가 쓰레기를 쓸어모아서 그가 들고 있는 마대자루에 담는 식이었다(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군대에서는 청소도구 하나에도 ‘계급별 분업’이 적용된다. 당시 나는 일병이었고 그는 이등병이었다).

왜 였을까. 그날 따라 난 그가 미워보였다. 자꾸만 문제를 일으키는 그가 왠지 모르게 답답했다. 그리하여 청소를 하던 중,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네가 싫어.”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본다. 직접 소리를 내서 말해본다. 나도 네가 싫어...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직접 대놓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것도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비방을 받아 매우 괴로운 상황에 있다면. 참으로 웃기는 것은, 그를 위로한답시고 이런 말을 덧붙였던 것이다. “종교의 힘으로 이겨내라.” 그는 기독교 신자였고, 내 딴에는 생각해서 한다는 말이 그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분명 가혹 행위였고 언어적 폭력이었다. 그보다 ‘계급이 높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난 누군가의 가슴에 비수를 꽂을 수 있는 그런 말을 너무나 쉽게 내뱉었다. ‘군기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난 그 사람을 함부로 대했다. 그것은 계급을 이용한 전형적인 방식의 폭력이었고,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였다.

그가 과연 잘못을 하기나 했던 것일까. 오히려 그는 군대가 강요하는 ‘빠르고 강한 남성성’의 피해자였을 뿐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고개를 떨구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아른거린다.

“야 이 XXX들아!”

그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계급은 낮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자신보다 1년 정도 군에 늦게 들어온 사람을 ‘아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먼저 들어온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 늦게 들어온 사람을 일대 일로 챙겨주는 그런 관계가 있었다(군대가 가부장적 가족질서의 연장선에 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군대와 가족을 움직이는 핵심원리 중 하나는 ‘아버지’를 정점으로 하는 위계질서다). 나와 그 두 명은 1년 정도의 계급차이가 나는 관계였고, 그 중 한 명은 내가 직접적으로 챙겨주고 있던 ‘아들’이었다.

사실 그들은 나이로 인해 각자의 생활에서 이런저런 갈등이 많았다. 모두가 자기 또래보다 늦은 나이에 군에 들어왔고, 그래서 보이지 않는 갈등을 겪고 있던 상태였다. 그 중에서도 내 ‘아들’은 문제의 다른 한 명보다 계급이 약간 낮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무실에서 모두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어디에선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그 두 명이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점점 심해지는가 싶더니 욕설도 오가고 주먹다짐까지 하려 했다. 중요한 것은 계급이 낮은 내 ‘아들’이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다른 한 명에게 ‘반말’을 하며 싸우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이에게 반말을 하고 대드는 것은, 군대가 정해놓은 가장 기본적인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중에서 계급이 가장 높았고, 그들을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나는 병장이었고 그들은 상병이었다). 그러다 난 갑자기 내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우습지만, 상황을 종료 시키기 위한 시나리오를 급히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내무실로 들어갔다.

“야 이 XXX들아!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이어서 위협을 주기 위해 험한 말을 더 했던 것 같고, 얽혀있는 그들을 풀어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멱살을 하나씩 잡은 뒤, 내무실 밖으로 거칠게 끌고 나왔다.

당시 나의 욕설과 행동은 내무실 사람들 모두에게 ‘충격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이전까지 그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말이 별로 없는, 가끔씩 지그시 웃어주는 조용한 선임병이었고 욕설과는 거리가 먼 ‘착한’ 이미지였다. 더군다나 난 비교적 친하게 지냈던 두 사람에게, 그 중 한 명은 나의 ‘아들’이었던 사람에게 그렇게 욕을 하고 거친 행동을 한 것이다. 두 사람은 물론이고 내무실 사람들이 모두 당혹해 하며 나를 쳐다봤다.

당시 나는 왜 그렇게 했던가. 무엇보다 먼저, 군대의 위계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였다(지금 생각해보면 이해되지 않지만). 계급이 낮은 사람은 계급이 높은 사람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이 군대의 질서였고, 난 그 질서가 공개적으로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극상’이 일어나고 있었고, 난 그것을 막아야 했던 것이다.

다음으로, 사실 이것이 더 큰 이유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이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내가 얼마나 쉽게 보였으면 내 앞에서 그렇게 싸우고 있을까. 나보다 무서운 선임병이 내무실에 있었다면,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난 그 두 사람이 그만큼 나를 ‘우습게’ 봤기 때문에 싸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내가 ‘고참’으로서 갖췄어야 할 ‘무섭고 위엄 있는 남성성’이 부족하다는 뜻이었고, 나의 ‘계급적 권위’가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사실 나는 첫 번째 글에서 언급한 구타 사건 이후로 ‘고참 되기’를 거부했다. 당시 일기장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고참 되기를 거부한다. 군대사회가 원하는 ‘좋은 고참’, 나는 인정 받는 그런 고참이 되기 싫다. 욕을 먹어도 좋다. ‘너 같은 놈도 고참이냐?’ ‘그래 가지고 고참대우 받겠냐?’ ‘상병 계급 단 놈이 그렇게 조용해야 되겠냐?’ 나는 각오가 되어 있다.”

결국 나는 나의 부족한 남성성과 무너진 권위에 발끈했고, 이에 욕설을 퍼부으며 거칠게 행동했던 것이다. 상대방의 인격을 욕설로써 짓밟고 물리적인 힘으로 권위를 세우려 했던 행동. 그것은 나의 두 번째 가혹 행위였다.

용서 받지 못한 자

그렇다. 나도 가해자였다. 앞에서 말한 두 차례의 가혹행위(내가 기억하고 있지 못한, 또 다른 행위들이 더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다른 이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었던 일도 많았을 것이다). 그것은 피해자에게도 아픔을 주는 것이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내 자신에게 아픔을 주는 행위였다. 남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죄책감,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자괴감.

특히 두 번째 일은 지금도 내게 아주 크고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군대에 가면 (계급이 높을 경우)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도 반말을 해야 한다는 현실에 대해,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거라며 미리 걱정을 했던 순진한 나였다. 욕설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래서 내무실 밖에서 시나리오를 짜며 미리 욕설을 ‘연습’까지 해야 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결국 폭력적인 군대질서에 충성을 다해 복무했다는 사실은, 내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다.

그래서 일까. 나는 윤종빈 감독의 <용서 받지 못한 자>를 내 생애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는다. 자신의 후임병이 자살을 하자, 자신 역시 자살로써 그 죄책감을 덜고자 했던 비극적 결말. 한편으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기만 한 그 영화가 나에게 ‘최고’의 영화가 된다는 사실이 허무하기도 하다. 어떤 대단한 그 무엇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영화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해본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군대 안에서 나에게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싶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그들과의 만남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 이 글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도 실렸습니다. (2007년 3월 26일)


* 후원회원이신 성주님은 공부하는 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