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시선

[여옥] 다른 존재의 고통을 딛고선 삶을 돌아보며

평화바닥 2009. 7. 11. 04:43
다른 존재의 고통을 딛고선 삶을 돌아보며
<채식속으로 Go!Go! 3편>

여옥


생각해보니 채식을 한지 일년이 조금 넘었다. 아, 정말 얼마 안되었구나. 느끼는 것보다는 훨씬 짧은 기간이다.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그랬을까. 같이 고기를 먹자는 제안도 많았고, 실제로 많은 유혹에 끌리기도 하고, 부끄럽지만 어쩌다가 유혹에 넘어가기도 했다.

제때 밥을 챙겨먹지 않는 이상한 식습관 탓에 내가 먹는 ‘밥’은 식사 때가 아닌 애매한 시간의 군것질로 대신 채워지곤 했다. 사무실의 컵라면, 시장의 떡볶이, 편의점의 김밥 등. 그래서 그동안 쌓인 채식의 노하우라고는 어디 편의점의 어떤김밥에 햄이 안들어가는지 아는 것 정도가 전부이다. 같이 사는 친구도, 사무실에서 보는 친구들도 다 채식을 하니까 메뉴선정에 있어서의 과정들은 나보다 더 오래 채식을 한 그들이 알아서 처리해주는 경우가 더 많고, 왜 고기를 안먹는지 설명해야하는 일도 없다. 익숙해지면 그저 관성처럼 흘러가버려서 내가 선택한 즐거운 불편함도,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켜내는 뿌듯함도 느끼지 못하고 의식하지조차 못하게 되버렸다. 먹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않고 살다보니 채식도 더 이상 내 삶에 별 의미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었다.

채식과 가죽

얼마 전 계획에 없던 소득이 좀 생기는 일이 있었다. 돈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는지라 어디에 썼는지도 모르게 다 써버리기 전 무언가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쌔끈한 겨울부츠가 눈에 들어왔다. 이쁜 가죽부츠 하나 사려고 맘을 먹고 돌아다닐 때마다 눈여겨보며 이것저것 따져보던 어느 날. 내가 입고있던 가죽자켓을 보고 친구가 물었다.
"이거 진짜 가죽이야? 너 채식하잖아."
이 옷은 내가 채식을 생각하기 한참 전부터 있었을 뿐이고, 고기 안먹는다고 가죽옷 입으면 안되는 것도 아니고, 너는 채식도 안하면서 왜 그러냐고, 어쩌고저쩌고.. 나도 당황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말도 안되게 더듬거리며 늘어놓고 있는데 친구는 다시 얘기했다.
"그치. 병역거부자가 스타크래프트 할 수도 있지."
쿵. 충격이었다. 내가 신뢰하는 친구가 하는 얘기라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나 하나 가죽옷 안입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그렇다고 이미 가지고 있는 옷을 안 입는 것도 좀 그렇다, 그래도 고기는 안먹으려고 노력하니까 그나마 나은 편이다.. 잠시 이런저런 이유를 떠올려보다가 몹시도 부끄러워졌다. 내가 떠올린 이유들은 모두 변명이었으니까. 내가 채식을 한다고 했을 때 말리던 사람들이 했던 얘기와도 너무나 닮아있는 그런 변명들이었으니까. 집에 와서 옷장을 보니 토끼털 패딩도 보이고 가죽장갑도 보이고.. 맙소사. 왜 난 그동안 고기를 먹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했으면서 가죽옷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보지 않았던 걸까? 내가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존재의 ‘피부’ 때문이었던 걸까? 그래서 가죽부츠를 장만하려던 계획을 전면수정하여 운동화를 하나 장만했다. 가죽옷에 대해서 별다른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내게 그 친구의 이야기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채식의 의미부터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내 삶이 어떤 고통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지 직면하는 것은 결코 쉽지않은 일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살아가면서 다른 존재의 도움없이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 다른 존재의 고통과 희생 없이 이루어지는 것들이 있을까. 매일아침 나의 잠을 깨워주는 커피는 제3세계 농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생산된 것이고, 그동안 엠티에서 분위기메이커로 큰 역할을 해왔던 내 기타는 콜트 노동자들의 피눈물과 한숨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합성섬유로 만든 옷은 전쟁의 원인이 되는 석유에서 나온게 대부분이고, 공짜로 받아서인지 가끔 잘 되지도 않는 내 핸드폰은 삼성이고. 내가 쓰고있는 물건 어느것 하나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지 않고 만들어진 것이 있을런지. 그럼 난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일까.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일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내가 고기를 먹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이유 중 하나는 세상에 덜 피해주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내가 딛고 서있는 많은 고통들 중에 그나마 쉽게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육식이었기 때문에. 혹시 이것마저도 너무 쉽게 선택해버린 것은 아니었을지 반성해본다. 계속 긴장하지 않으면, 고민하며 노력하지 않으면 내가 하려고 하는 채식도, 지향하는 가치도 결국 살아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싶다. 결국 삶은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니까.


* 평화바닥 후원회원인 여옥님은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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