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전파! 마쓰모토 하지메의 '가난뱅이의 역습'
대학교 때 운동권이라는 사람들은 대체로 촌스러웠습니다. 비싼 상표의 제품을 사면 비난했고, 영어 공부를 하면 제국의 언어를 배운다며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강박적으로 '그지'같이 하고 다녔고, 그렇다고 해서 정말 더러웠던 건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저는 어쩐지 정말로 더러운 것만 같아서 곁에 가기가 싫었었습니다. 그리고 늘 후원금을 받으러 돌아다녔지만,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서 후원할 생각은 전혀 없는 비상식적인 그들을 보면서 저는 심한 욕지기까지 느꼈습니다. 여성문제를 자기들의 문제로 받아안지도 못하고, 일회용품을 아무 의식없이 써 버리는 그들을 보면서, 그리고 정말 중요한 문제는 '정치'라고 생각하는 그들을 보면서 운동이 정말 저런 것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자신 하나 바꾸지 못하면서 세계를 혁명하겠다니…. 우스운 일이었죠. 그래서 저는 그들과 인연을 끊고, 혼자만의 생활혁명을 시작했습니다. 고기 안 먹기, 엘리베이터 안 타기, 후원금 내기 뭐 기타 등등. 제가 보기에 특정 정치인을 당선시켜서 세상을 뒤엎겠다는 그들의 생각이 너무 이상했고, 그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고, 그래서 세상이 바뀔 때까지 자기네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겠다는 건가, 이것 참 무기력한 인간들일세그려,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무튼 그래서 멋대가리 없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그들은 저를 선동하지 못했다는 건데, 그 이유가 바로 그들은 재미도 없고, 멋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즐길 수 있나 보자'하고 데모를 한다." 그의 '투쟁기'의 필살기는 '웃기기'에 있다. "자기 사는 곳에서 자신의 삶을 찾는 데모를 하는데, 즐겁지 않으면 할 필요 없다. 안 하고 말지." _ 마쓰모토 하지메
갑자기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얼마 전에 읽은 『가난뱅이의 역습』의 저자, 마쓰모토 하지메 때문입니다. 뭐, 사실 이 책, 개인적으로는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라 그저 그렇게 읽었습니다만, 한 가지 감동적이었던 것은 가난뱅이의 역습을 주도한 주인공, 하지메 상이 그 운동을 확산시켜 나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즐거웠거든요. 스스로도, 타인이 보기에도, 그리고 함께 그 운동을 하기에도 말이죠. 즐거운 감정은 정말 쉽게 전파되는지, 그의 주변은 늘 왁자지껄 재미있는 일, 흥미로운 일,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운동(運動)이라는 것은 즐거워야만(그래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 때에만) 다른 사람이건, 세상이건,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즐거움의 에너지로 흥겹게! 말이죠.^^;; 함께 찌개를 끓여먹으면서 투쟁을 하거나, 경찰을 속이거나 하면서 자신의 일상의 배치를 바꾸고 그 흐름을 바꾸어 놓는다는 것은 뭐랄까, 누구라도 한 번은 해보고 싶은 일이고, 그렇게 즐겁고 신나는 일은 또 쉽게 전파되기 마련이니까요.
제가 운동권 선배들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았던 것은 생각해 보건대, 그들이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저 스스로가 흥겹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들의 활동에서 어떤 '자유로움'이나 '혁명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삶을 바꾼다는 것은 '말'과 '구호'로만 가능한 게 아님을 그 운동권 선배들은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뭐랄까, 그들이 거대 담론에 치여, 자신을 혁명하면서 느끼게 되는 자유를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그의 글 「역순의 혁명」(『부커진 R 1.5』)에서 "결과적으로 진정한 혁명적 자유의 경험에 가까워질수록 그 자유를 즉각 경험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을 하며 아나키스트 선동가 집단인 크라임에스의 선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실이라는 직물에 구멍을 내고 우리를 형성할 새로운 현실을 일궈 나가며 우리의 자유를 만들어야 한다. 계속해서 새로운 상황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습관, 관습, 법, 또는 편견의 관성에 방해받지 않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들의 창출은 전적으로 스스로의 몫이다.
자유는 혁명의 순간에만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순간들은 생각보다 드물지 않다. 변혁, 혁명적 변혁은 어디서나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 속에서 하나의 역할은 담당하고 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데모 당일, 원래는 참가자를 4명으로 신청했지만, 한 놈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3명이 되었다. 출발지 이사가야 역 북쪽 출구에 있는 공원으로 가보니, 예상대로 경찰이 죽 늘어서 있다! 저번처럼 큰 소동이 날까 봐 사복형사도 10명 남짓 와 있었다. 경관이 무전기로 얘기하는 것을 무심코 들었더니 근처에 기동대 버스까지 대기하고 있단다. 이보시오! 그렇게 3명이라고 말씀을 올렸건만 믿어주지 않으셨단 말씀입니까! 딱하십니다! 정말 3명밖에 없는 것을 본 노○씨도 "어, 이것뿐이야?"하고 김이 빠진 듯했다. 한 술 더 떠..."(본문 132~3쪽)
자유는 혁명의 순간에만 존재한다는 말, 그것은 늘 자유롭기를 열망하는 우리 자신에게 지금 당장 던져 보아야 하는 선언이고, 계속해서 새로운 상황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 역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서 외부가 바뀌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 던져 보아야 하는 선언입니다. 『가난뱅이의 역습』의 마쓰모토 하지메처럼, 우리의 일상은 즐겁고 자유로워야 하며, 우리의 혁명 역시도 즐겁고 능동적이어야 합니다. 하지메 상의 외침은 "우리 모두 궁상맞아지자", "가난뱅이로 살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창조적인 삶을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고, "다 같이 즐거워지자"는 걸 겁니다. 어느 순간 유행처럼 번진 이 책과 '아마추어의 반란'에서 사람들이 이 즐거움의 전파를 받는다면, 이토록 재미없고 별다를 것 없고 식상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일상도 120배 신나게 될 것입니다. 나의 삶이 즐거워지면 적어도 나에게는 의미있는 세상이 될 테고, 나에게 의미있는 세상은 모두에게 의미있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의 바람 비슷한 것입니다만…, 에… 그러니까 우리 모두 즐깁시다. (..응?) 인조이!^ㅁ^ .
* 평화바닥 후원회원인 임유진님은 <도서출판 그린비>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도서출판 그린비>의 홈페이지(http://greenbee.co.kr/)에 포스팅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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