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시선

[물꽃] 여성에게 신체에 대한 자유를 허하라

평화바닥 2010. 3. 15. 00:24

 

여성에게 신체에 대한 자유를 허하라

 

물꽃



‘인신 즉 신체의 자유’는 근대 인권 개념의 핵심이다. 인신의 자유는 자연법에 따른 천부인권으로서, 인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권리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성에게 신체의 자유란 국가 등과 같은 권력기관으로부터 부당하게 침해받지 않을 몸에 대한 권리뿐 아니라 성관계, 임신, 낙태, 출산, 양육에 이르는 재생산의 과정에서 자신의 신체와 관련된 일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 재생산 과정은 다름 아닌 여성의 신체에서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임신, 낙태, 출산, 육아 등의 전 과정을 포괄하는 재생산에 대한 여성의 선택권 보장은 무엇보다도 한 여성이 각 사회에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참여하는 데 기본적인 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여성이 임신 및 출산 등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면 여성들의 사회참여 및 경제활동에 제약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성들의 낙태권을 제한하는 것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유 및 권리를 침해할 뿐 아니라 여성들이 남성 시민들과 동등한 시민으로 참여할 수 없게 하는 사회조건들을 만듦으로써 여성들의 평등권을 침해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23개국에서 낙태를 합법화하거나 낙태 허용 사유에 경제적·사회적 사유를 포함시켜 여성의 낙태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다. 유엔 ‘여성에 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을 비롯한 많은 국제인권법들도 낙태를 여성의 안전과 관련된 문제이자 재생산권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는 이런 국제적 흐름에 역행하는 움직임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진오비,’ ‘프로라이프 의사회’ 등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은 낙태시술 의사들을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지난해 11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는 저출산이라는 사회정책적 과제를 낙태 단속이라는 형법적 대책으로 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지난 1일 보건복지가족부는 ‘불법 인공 임신중절 예방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임신 및 출산에 대한 제대로 된 지원책 없이 낙태신고센터를 만드는 등 처벌 중심의 대책을 내놓았다.

 

여성이 출산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도 없이 단지 형법적 처벌을 강화해 낙태를 줄이겠다는 발상은 오히려 낙태시술을 음성화시켜 낙태시술 비용을 높이고, 여성들이 안전한 낙태시술을 받을 수 없게 만들 뿐이다. 그 결과는 그들이 바라는 대로 낙태 건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들로 하여금 높은 비용과 안전하지 않은 시술을 감내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낙태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여성이 재생산 과정에서 가져야 할 자신의 신체에 대한 자유와 권리의 문제, 그리고 한 여성이 한 사회에서 남성과 동등하고 평등한 시민으로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조건인 평등권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 낙태 문제 하나만 따로 떼어내 낙태를 하면 생명을 경시하는 것이고, 하지 않으면 생명을 경시하지 않는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이 문제를 바라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는 8일은 102번째 세계여성의 날이다. 여성이 지난 100년간 획득한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마냥 기뻐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우리는 다시 외쳐야 한다. “여성에게 신체에 대한 자유와 권리를 허하라.”

 

 

 

* 평화바닥 회원인 물꽃님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에서 일하며, <버마 어린이 교육을 생각하는 사람들>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겨레> 3월 6일자 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08394.htm

* http://peaceground.org/zeroboard/zboard.php?id=ground&no=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