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을 다녀와서]
국가가 아닌 땅, 국가를 넘어서는 삶을 그리며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라는 해법에 대한 의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소위 ‘2국가론’이 있다.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2개의 국가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강대국들이 그동안 제시한 대안이기도 했다. 팔레스타인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이라는 대재앙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60년 넘게 점령에 저항해 해방운동을 벌여 왔다. 이 운동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로 집약되기도 했었고 주요 정당은 이를 목표로 이스라엘과 수십 년 동안 평화협상에 임하기도 했었다.
침략받고, 난민이 되고, 땅을 빼앗기고, 집이 이스라엘 불도저에 허물어지는 경험을 60년 동안 무수히 반복해서 겪었기 때문에 해방을 쟁취하는 길은 독립된 주권을 가진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의 협상 과정은 이게 해법인지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한국의 언론매체에도 자주 글을 쓰는 팔레스타인 나자대학 사타르 카셈 교수는 홍미정 교수의 책 《팔레스타인 땅,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2국가 해법’의 환상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우리 팔레스타인인들은 묻는다. 팔레스타인 국가를 어디에 세운다는 말인가? 이스라엘의 정착촌들이 대거 들어서는 바람에 땅은 별로 남아 있지 않은데? 게다가 ‘남겨진 땅’이라고 해도 이스라엘 정착촌으로 통하는 관통도로들과 이스라엘 군대가 지키는 검문소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고 토막이 났는데?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 옆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운다는 ‘두 국가를 통한 해결책’이 해결책일 수 없다고 증언한다. 오히려 방관자들과 방조자들의 기만적이고 한가한 논의는 끝장내라고 절규한다.”
▲ 베들레헴의 고립장벽 (사진=염창근)
▲ 헤브론의 검문소 (사진=염창근)
하지만 ‘2국가론’은 더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과 이스라엘은 그동안 ‘2국가론’을 받아들인 팔레스타인 정당만을 선택해 협상하며 길들여 갔고, 이스라엘의 점령을 인정하는 ‘2국가 해법’에 반대를 표시한 팔레스타인 사람들 및 다른 정당들과 갈등을 부추겼다.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자신들을 배제한 채 그들끼리 결정하는 것에 반대했고, 한쪽에서 평화회담을 하면서 다른 쪽에선 가자에 폭격을 일삼는 것에 분노했으며, 이스라엘 점령촌이 끊임없이 건설되는 것에 저항했다.
그리고 어느새 정치적 성향이 다르더라도 함께 연대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분열되었고 결국 내전까지 벌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말할 것도 없이 그 과정에서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죽음으로 내몰렸다.
국가 건설을 위한 협상 회의에서는 늘 이런 말이 합의-선언되었다.
복종하는 이들에게만 허락되었던 국가
“몇 십 년 동안 지속된 유혈사태와 수난을 종식하고, 자유와 안보, 정의, 존엄, 상호존중에 입각한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고 평화와 비폭력의 문화를 전파하는 한편, 테러와 선동에 맞선다는 결의를 표명한다”고. 합의는 늘 좋은 말들의 성찬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종류의 합의엔 늘 ‘테러를 없애야 한다’는 단서가 달려 있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하면, ‘테러를 없애기 전까지 국가 건설은 없다’는 말이었다.
여기서 테러란 바로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을 의미했고, 구체적으로는 하마스를 비롯한 이스라엘 점령 정책을 반대하는 집단 자체를 뜻했다. 그리고 ‘테러 박멸’은 바로 자기네 계획의 반대자를 제거하라는 명령과 같은 말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강대국(특히 미국)의 세계 지배전략의 연장선에 불과하며 그들이 자기들의 세계를 만드는 방식이다.
그것은 ‘민족자결권’이나 ‘국가 건설’을 들먹이며 내부 경쟁을 부추기고 그 속에서 자기편을 찾아 끌어들이고자 한 전략이었다. 소위 ‘강경파’와 ‘온건파’를 구분해 온건 세력을 지원하며 길들여 왔다. 만일 예기치 않은 변수가 생기면 가차 없이 직접 개입하는 플랜도 세워져 있었다. 그들은 복종하는 세력에게만 국가를 허락해 준 것이다.
여기에 ‘NO’라고 말하는 세력들은 가차 없이 진압 대상이 되어왔다. 이런 국제적 힘의 룰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포인트를 잘못 맞추어도 제거 대상이 되었다. 마치 보편적인 인류애를 보여주는 듯한 언사를 내뱉으면서 다툼을 조장하고, 줄을 서겠다는 세력들에게는 지원하고 그래도 안되면 직접 개입하는 그런 방식. 이것이 그동안의 전쟁 시스템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강대국들의 중동 지배 전략은 팔레스타인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만일 이 지배체제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즉 친미-친서구 국가가 되지 않는다면 분쇄 대상이 되어야 했다. 여기에 정치적 성향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다. 반대하면 ‘강경 아랍 민족주의’ 내지 ‘테러 집단’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그렇게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레바논 등 대부분의 이슬람권 국가들이 순응했고 친미국가가 되었다. 최근에는 이라크가 두들겨 맞고 친미국가가 되었고, 아프가니스탄이 맞고 있는 중이고, 이란에겐 때리겠다고 위협하는 중이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방식도 이런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은 과연 좋다고만 할 수 있을까.
▲ 미국의 중동 정책을 비꼬는 아이의 그림. 울고 있는 이스라엘 아이에게 팔레스타인 아이의 피를 담은 우유병을 주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부시 행정부)은 2007년 ‘이제 팔레스타인도 독립국가를 건설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사진=염창근)
독립국가 건설안은, 내심이야 영구히 식민 지배를 하고 싶은 것일 테지만, 중동 상황의 여러 가지 변화들과 국제사회의 지탄과 압력을 회피할 수만은 없기에 팔레스타인 문제는 언젠가 매듭지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더 극성맞은 이슬람주의-민족주의 세력이 탄생하지 않기를 바랄 수도 있고, 더 ‘위험해 보이는 폭력 국가’들을 상대하기에 힘에 부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팔레스타인 국가는 정말 ‘독립국가’인가
분쇄되어야할 집단들이 살아남아 끈질기게 불복해서 지역 불안이 일어나는 것은 못마땅할 것이다. 성과를 내야하는 서구의 권력자들 입장에서는 ‘적’들은 필요하지만 적당히 ‘승리’하지 않으면 권력 연장에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또는 해묵고 오래된 분쟁 문제의 경우는 정돈만 잘 해주기만 해도 세계의 지배국으로서 국제적으로 칭송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식이라도 미국과 이스라엘이 정말 팔레스타인을 국가화하려 한다고 믿어 봐도 팔레스타인이 정말 ‘독립국가’가 될 것인지 의문이다. 말 잘 듣는 팔레스타인의 한 세력에게 국가를 내주고 이스라엘은 이들을 통해 통제하려는 계획이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무장저항세력을 진압하는 과제는 팔레스타인 친미세력에게 맡기자는 의도이다.
직접 제압한다면 그 대가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제공이라는 당근을 주는 것이다. 끈질지게 준동하는 소위 중동의 ‘테러세력’들과 팔레스타인이 연계되는 것을 막고 이스라엘이 표적에서 피한다는 계산일지도 모른다. 팔레스타인 무장저항운동은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군사적 명분을 세우기에 필요하기도 하지만, 안보에 결정적인 위험이 되지는 않는 선에서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국가가 생기면 일단 내부적 위험은 상당히 축소될 수 있으며 군사적으로 대처하기 더 쉬울 지도 모른다.
▲ 순교한 이를 기리는 포스터(나블루스). 팔레스타인 마을 곳곳에는 길거리에 이런 포스터가 붙어 있다. (사진=염창근)
따라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건설된다면 바로 이스라엘과 미국에 의존하는 시스템 속에 놓인 국가일 것이다. 팔레스타인에서 제기하는 무수한 문제들(국경 문제, 난민귀환 문제, 예루살렘 귀속 문제, 점령촌 문제, 수자원 문제 등)은 점점 사장되지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의 전제조건으로 유대국가를 더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 입으로는 평화를 말하고 협상에 나오지만, 다른 입으로는 점령촌 건설을 승인하고 추진한다. 이스라엘은 언젠가 있을지 모를 팔레스타인 분리를 염두하고 최대한 영토를 장악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일환 속에 추진되는 독립국가 건설은 정말 ‘독립’국가라 할 수 있을까? 점령당한 땅이라는 예속이 유지되고 있는 국가, 이스라엘의 군사력에 감시당하는 국가, 경제적으로 식민지화되어 산업이라는 자체가 거의 없는 국가, 전기도 물도 이스라엘로부터 허락받아 써야 할 만큼 인프라 자체가 종속된 국가, 그리고 이스라엘로 편입된 지역에는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그런 국가일 것이다.
게다가 이미 150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지역에서 살고 있고 450만이 서안과 가자에 있고 또 450만이 주변 국가에 난민으로 있기에 지역 문제들은 끊임없이 발생될 것이고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 위협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일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바라는 진정으로 평화로운 세상은 국가 건립이 된다 해도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국가가 아닌 땅, 국가를 넘어서는 삶을 그리며
팔레스타인 땅을 여행하고 보면서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해결책이 환상처럼 다가올 때 한 가지 의문이 더 들었다. 국가라는 틀은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가 하는 점이었다.
익히 국가주의와 국가폭력의 문제를 제기했던 많은 논의들처럼 국가에는 풀기 어려운 과제들이 뒤따른다. 국가가 수립되어 일단 개인 권리의 보호자가 되면 개개인은 점차 국가에 의지하게 되고 국가기구는 견고해지기 마련이다. 점차 타자에 대한 울타리도 높아져만 갈 것이다. 국가의 이익 증대가 곧 나의 이익 증대라고 동일시하고 심지어 평화를 향한 마음도 국가로 귀속될지도 모른다. 그 극단적 사례가 바로 이스라엘일 것이다. 국가가 없는 곳에서 이런 생각은 기우겠지만 국가주의에 갇히는 일이 자유일 수 있는지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미 그런 문제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라기보다 ‘땅’이라는 의미로 여겼다. 이 땅에서의 분쟁은 두 종교국가의 대립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이라는 종교국가가 땅을 차지하면서 팔레스타인을 지키려는 운동이 일어났을 뿐이었다.
물론 일부에서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라는 이름으로 운동하기도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종교국가를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다. 물론 대다수 사람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를 비롯해 여러 종교와 더불어 사는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의 행사가 팔레스타인 도시마다 열렸다. 이런 문화는 팔레스타인 땅에서는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
이는 단순히 팔레스타인 땅의 78%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쓰고, 22%는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을 쓴다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국가 형성 이전에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 서로를 인식하는 듯했다. 그 속에는 유대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분명하게는 알 길은 없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는 그 지역 사람들이 그대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대교인, 이슬람교인, 기독교인 할 것 없이 그 지역 사람들이 이 땅에 존재하거나 들어오는 종교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종교를 받아들였을 뿐 종교를 기준으로 민족적 구분을 짓는 것은 무의미해 보였다.
▲ 라말라 시내에 있는 한 교회. 교회의 입구쪽 벽에는 잘려간 올리브나무를 안고 울고 있는 여성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사진=염창근)
▲ 예수가 처형되어 죽은 곳으로 불리는 성분묘 교회 내부 (사진=염창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 오해(이스라엘은 민주국가이고 팔레스타인은 이슬람 종교국가이다)는 오히려 정반대에 가까웠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지역도 팔레스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이스라엘이라는 유대인 국가로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땅 지명을 모두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 버렸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이 땅은 오래전부터 살아왔던, 분리할 수 없이 이어져 있는 삶의 공간으로 여겼다. 무엇으로 불리든 이곳은 팔레스타인 땅인 것이다. 오히려 땅을 구분하는 일이야말로 점령자의 시선이라고 우려하는 것 같았다.
땅이라는 것은 땅따먹기하듯 점령해서 차지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가장 이스라엘에 비타협적이라는 하마스도 ‘1967년 이전 경계(팔레스타인 땅의 22%)로 이스라엘이 물러간다면 유대인과 공존하겠다’고 말했다. 과연 누가 문제인가? 땅을 갈라 내 땅, 네 땅으로 나누는 시선은 누구의 것인가? 팔레스타인 마을에 관통도로를 뚫고 점령촌과 고립장벽을 세우고 검문소를 설치하는 이스라엘이 유대국가를 고집하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이 이야기된다. 이런 국가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는 해결책 대신 다른 답은 찾을 수 없을까? 국가라는 틀이 아닌 다른 커뮤니티, 다른 네트워크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꿈인 것일까? 프리모 레비나 한때 한 유대인 그룹이 ‘우리는 영원히 국가 없이 살아가자’고 제안했던 것과 같은 선택은 할 수 없을까?
국가주의의 폐해를 딛고 민주적 다민족ㆍ다종교 사회, 국가체제를 넘어선 사회를 준비해 가는 일은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 민족이나 종교가 차별과 배제의 기준이 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 때 평화는 허구가 아니라 시야 안에 들어오지 않을까? 이미 팔레스타인에는 60년 동안 점령당한 경험에서 나온 진하고 미래지향적인 그런 삶을 준비하고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래를 선취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들이 분명 팔레스타인에 있었다.
▲ 하이파의 전경. 하이파는 이스라엘 건국 이전에는 유대인, 아랍인 할 것 없이 함께 활동을 벌일 정도로 공존했던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사진=염창근)
짧은 시간의 여정이었지만, 팔레스타인을 여행하면서 알 수 있었던 게 하나 있었다. 그 오랜 세월 디아스포라로 떠돌아다닌 유대인들을 받아준 것은 팔레스타인이 유일했다는 점이다. 20세기 초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유대인들이 전 세계에서 억압받고 있을 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주해 오는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갔던 공간인 이곳은 누구라도 맞이하며 사는 것이 자신들의 민족적 특성이라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런 팔레스타인의 소중함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기억해 내기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 가지가 떨쳐지지 않는 것이 있다. 팔레스타인에서 한국 기업의 제품과 광고판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봤을 땐 한국인을 처음 보기라도 한 것처럼 신기하게 쳐다봤음에도 수많은 한국 기업들에는 매우 익숙해 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장 많이 타고 다닌 차는 현대, 기아와 같은 한국 기업의 자동차였고 전자제품도 LG, 삼성의 것을 많이 이용했다.
심지어 아무런 기업의 광고도 없었던 난민촌에서도 모 한국 기업의 로고는 보였다. 또한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 그 땅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도 매우 많았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본 어디에서도 한국과 관련된 곳이 팔레스타인의 고난에 지원을 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이익을 위해 오랜 분쟁의 지역까지 들어가는 한국이지만 이 땅의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점이 씁쓸하게 남았다. 이익으로만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더 나은 인간적 관계를 모색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 난민촌에까지 들어와 있는 한국 기업. 아무런 광고판도 없는 이 잘라존 난민촌에서 기업의 로고라고 본 것은 LG가 유일했다. (사진=염창근)
* 이 글은 레디앙에 실은 글입니다.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7482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7580
* http://peaceground.org/zeroboard/zboard.php?id=ground&no=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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