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와 학생인권조례안
ㅡ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김연아 광풍’을 보는 불편함
나는 그날의 일을 잊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나이 또래의 호기심 때문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실제로 평범한 아이들에게 김선일 씨의 참수 동영상이란 그저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그 많은 ‘엽기’ 동영상의 하나에 불과할 것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김선일 씨의 죽음의 본질에 대해 무심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나는 아이들이 그 영상을 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의 한편에 그것을 억제할 그 어떤 도덕적 관념―그것은 인간적인 자존과 연관되는 일종의 균형감각일지도 모른다―이 개재되지 못함이 놀라웠던 것이다. 과연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그 나이들이 그 정도도 의식할 수 없는 나이일까, 이것을 인터넷세대의 속성으로 치부해버리면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만은 떠나지 않았다. (이계삼,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19-20쪽)
4분여간의 공연을 마친 뒤 김연아 선수의 눈가에 비치던 눈물의 모습은 확실히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감동은 거기까지. 김연아 선수의 공연이 있기 전부터 공연 당일 그리고 그 이후로도 며칠에 걸쳐 온통 ‘김연아’ 얘기밖에 나오지 않는 세상을 보며 나는 몇 년 전 ‘황우석’에 열광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비슷한 종류의 광기(狂氣)가 감지되는 듯했다.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가 공연 중에 실수를 하는 모습을 보며 환호성을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에 와락 소름이 끼쳤다. ‘우리 편’이 아닌 자를 가차 없이 쳐내는 사람들의 잔인함을 확인했을 때, ‘아사다 마오’의 자리에 언제든 내가 들어갈 수도 있겠단 무서움이 찾아들었다.
“러시아의 스파이로 체포된 중국인이 처형당하는 장면”을 보며 “우뢰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을 내지르는 일본인”(위의 책, 17쪽)과 김선일 씨의 참수 장면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아이들 그리고 아사다 마오의 실수를 보고 기뻐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어쩌다 사람들은 이렇게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기보다는 오히려 즐김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 사람들은 그 ‘희생양’의 자리에 어느 순간 자신이 놓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애써 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그 자리에 놓이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만만한 타자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현직 교사인 이계삼은 “지금 이 땅의 교육이 아이들로 하여금 ‘사람을 잡아먹게끔’ 만들고 있다”는 문제의식으로 자신의 학교 현장에서의 경험을 밑천 삼아 앞서의 질문들에 대한 고민을 풀어나간다.
학교의 관료주의와 비정규직 직원
내가 사범대학에 갓 입학할 때의 꿈은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그 꿈을 가지고 방학 때 지역 중학생들과 일주일씩 만났고, 지역 공부방에서 한동안 아이들을 꾸준히 만났다. 하지만 ‘의식화’라는 계몽의 의도를 가지고 만난 아이들과의 관계는 금세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내가 의도한 대로 따라주지 않았을 때 나는 이내 아이들을 원망했고 스스로 좌절해 버렸다. 무엇보다 내 스스로가 과연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갖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고, 난 어느새 교사의 꿈을 더 이상 꾸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교육’에 대한 관심과 고민을 한동안 접고 지내다가 마침 한 고등학교에서 6개월간 계약직 행정직원으로 일할 기회가 생겼다. 내게 주어진 업무는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서류작업을 돕는 역할이었다. 난 직속상관과 더 높은 상관인 부장교사, 그리고 더 나아가 교감과 교장의 지휘를 받는 가장 말단의 비정규직 직원이었다.
그곳에서 일을 하는 과정에서 난 비정규직이 단지 임금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자리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소위 ‘전천후 백업요원’으로 온갖 잔심부름들을 하고 있다 보면 내가 돈을 받고 일하는 ‘합법적 노예’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내가 교사들 사이에서 말 그대로 ‘비가시화’된 존재라는 느낌이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교직원 식당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그달에 생일을 맞은 교직원들에게 케이크를 챙겨주는데, 살짝 불안하긴 했지만 정말로 내 이름이 생일 명단에 보이지 않았을 때 난 괜히 내가 더 민망해져서 옆에 함께 있던 선생님에게 이번 달에 내 생일이 있다는 것을 부러 말하지 않았다. 일한 지 6개월이 다 되어가던 시점에도 내 이름을 모르고 나를 행정직원이라고 부르던 교사들과 지내다 보니, 내가 그 공간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자연스레 친해진 사람은 다름 아닌 교무보조 선생님이었다. 재미있는 건, 그나마 나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라도 있었지만 그 교무보조 선생님은 단지 그냥 ‘누구누구 씨’였다.
상명하달의 위계적인 군사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내가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고민이기도 한데, 그 위계적인 관료문화를 나는 다른 곳도 아닌 학교에서 말단직원으로 일하는 동안 뼈저리게 체감하였다. 상명하달의 문화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내 양심과 고민을 죽인 채 내게 부과된 명령을 수행해야만 하는 순간들 때문이다. 난 벌점카드를 통해 아이들을 통제하는 발상에 동의할 수가 없는데 부장교사가 나에게 벌점카드의 내용을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공지해 달라는 부탁(명령)을 했을 때에 난 한동안 어찌 행동을 할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학교를 학생 인권이나 군사주의 문화 혹은 국가주의적인 교육과정 등과 같은 키워드로 고민해왔던 나에게 비정규직 피고용자로서의 경험은 이렇게 학교의 관료문화에 대해 새로이 고민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공무원 조직사회에 있다 보니 내게도 어느새 체득되어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경악을 했던 태도가 있었다. 다른 게 아니라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었다. 이 습성은 공무원들의 ‘먹고사니즘’과 ‘보신주의’ 그리고 ‘담당자주의’를 지탱하는 하나의 진리처럼 보였다. 하루는 내게 다른 교무실의 선생님들에게 연락을 돌리는 일이 주어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연락을 돌리다 보니 관련 교사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란 것이 명확해졌다. 이런 상황에선 내가 계속 연락을 돌리는 것이 공연한 에너지 낭비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구체적인 문제의 상황을 근원에서부터 해결한다면 모두의 에너지를 아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어떤 부서의 어떤 교사에게 얘기를 해야 할지부터 막막해지기 시작했고, 또 그걸 찾느라 이리저리 알아보는 것이 더 귀찮고 피곤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난 그냥 원래 주어진 대로 업무를 수행하기로 했다.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더라도 최소한 나에게 당장 피해가 오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면 그냥 나도 은근슬쩍 그 구조 속에 묻어가는 것이 편하단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개인의 책임이 언제든 감춰질 수 있는 구조가 지속되는 한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안이 필요한 이유
앞서 언급한 학교의 관료적인 문화는 ‘비인격적’ 사유를 조장한다는 측면에서 학교에서 학생들이 경험하는 반(反)인권적이고 통제 위주의 문화를 재생산하는 하나의 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맞은편에 있는 대상이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권총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것과 같은 논리로, 관료적 질서에 익숙해진 교사는 학생을 자신처럼 복잡한 감정과 욕구를 지닌 한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만 쉬이 조작가능한 행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프로세스를 자연스럽게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일했던 그 학교에서 겪은 또 하나 에피소드가 있다. 하루는 그 학교의 졸업생들 여러 명이 자신들의 옛 담임선생님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 친구들 중 한 명이 고시 준비 공부 경험담을 꺼내기 시작하는데, 결론은 “우리 고등학교가 공부하기 제일 좋아요. 세끼 밥 나오지, 책상 주지, 운동장 있지, 저 정말 다시 들어오고 싶어요!”였다. 참고로 이 학교를 다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며 2주에 한 번씩 있는 ‘놀토’에 집을 다녀올 수가 있다. 정문엔 수위실이 있어서,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자유롭지만 밖으로 나오는 것은 교사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는 기숙사에서 점호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묘사를 하면 이 학교의 모습이 우리에게 익숙한 군대 혹은 감옥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그 졸업생은 학교가 그립다면서 다시 돌아오고 싶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그 학생의 말이 뭐 그렇게까지 진지한 얘기는 아니었겠지만, 농담으로나마 자기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이 가장 좋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난 속으로 많이 놀라웠고 동시에 슬프기도 했다.
아이들은 부모 세대의 욕망이 구축한 시스템의 상자 안에 갇혀 버렸다. 그들에게 사물과의 진정한 교섭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학교와 어른들이 가르치려 드는 가치들은 다만 본능적인 회의의 대상이다.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그 경험의 알짬인 가치가 자리잡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 가치의 허무주의,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족·친구 집단 같은 실체적 공동체건, 국가·민족 같은 상상된 공동체건)에서의 존재감의 확인, 그것밖에는 없다. (중략)
그래서 아이들은 제 존재감으로 육박해 오는 것들에 열광한다. 학교에서 하는 전체 모임은 그토록 지겨워하고, 국민의례에는 덤덤한 아이들이 월드컵 때는 붉은 악마가 되어 “대~한민국”에 눈물 흘린다. 아이들은 그래서 국민영웅 황우석을 흠집내는 진보주의자들에 분노하고, 독도를 제 땅이라고 우기는 ‘쪽발이’들과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한다. “아니, 왜, ‘우리땅’ 독도를 건드리고, 우리의 영웅 황우석 박사에게 가탁된 내 존재감을 박탈해 가느냐”고 말이다. (위의 책, 96~97쪽)
인간의 상상력은 자신의 감각으로 지각하는 것 이상을 뛰어넘기 힘들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또한, 인간이란 종은 현재 자신이 적응해서 익숙해진 환경을 벗어나려는 변화를 태생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애초부터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자신을 옥죄는 억압적인 문화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남은 학생들이 오히려 그 폭력적인 구조를 긍정하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에 어떤 식으로 반응을 해야 좋을지 망설여진다. 물론 내게 가장 크게 드는 감정은 안타까움일 것이다. 그네들이 경험한 것과는 다른 방식의 집단 문화, 좀 더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의 관계맺음의 방식을 경험해 보았더라면 여전히 과연 그렇게 ‘감옥과 같은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은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효율성은 일면 한국 사회의 탈권위화를 이끈 측면이 있다. 예컨대, 고객이 왕이라느니 소비자인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식의 논의는 그동안 콧대 높던 공직 사회에 ‘친절함’이라는 가치를 전파시켰다. 학교 공간도 예외는 아닌데, 학교를 이윤추구의 공간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여느 회사들처럼 성과급 제도가 도입되었고, 급기야 우수교사 시상의 문구에는 ‘고객만족도’라는 표현이 들어섰다. 학생들도 이젠 엄연한 고객이기 때문에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함부로 반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식의 친절, 배려의 기반에는 철저한 경쟁의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에서부터 남을 짓밟고 올라서야 자신이 살 수 있는 약육강식의 논리에 익숙해진 대가로 학생들은 타자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성장하여 주류를 이룬 사회에서 사람들이 김선일 씨 참수 동영상을 찾아보고, 아사다 마오의 실수에 환호를 지르는 모습은 어쩌면 자연스런 귀결일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경기도학생인권조례안은 그동안 너무 익숙해서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학교의 반(反)인권적 문화들을 바꿔나갈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두발규제에서부터 체벌, 사상ㆍ양심의 자유, 집회ㆍ결사의 자유, 학생 참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상의 측면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의 삶의 양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학생 그리고 교사들이 경험할 수 있다면 지금과 같은 억압적인 학교 문화가 조금씩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들었다. 그리하여, 예컨대 한 남학생이 12년의 학창시절을 끝내고 군대를 다녀오고 회사에 들어간 뒤에 어느 순간 “원래 조직사회란 이런 거야”라고 너무나 당연하게 말하고 남들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악순환의 사슬이 하나씩 끊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은 차마 엄두도 못 내고 있지만, 꼭 교사로서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세상과 관계를 계속해서 맺어 나갈 수 있는 용기를 내게 준 구절을 함께 나누고 싶다.
선가(禪家)의 공안(公案) 같은,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나그네가 길을 가는데 토끼 한 마리가 사냥꾼을 피해 숨을 곳을 찾습니다. 나그네는 토끼를 숨겨줍니다. 좀 이어 사냥꾼이 나그네에게 토끼가 간 곳을 묻습니다. 나그네가 지금 있는 곳은 갈림길입니다. 이때 나그네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임의의 방향을 가리키면서 사냥꾼을 그곳으로 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은 해를 입지 않고 토끼도 지킬 수 있으므로 그것은 합리적이라고 평가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냥꾼에게도 토끼를 쫓는, 혹은 쫓을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이 자리는 서로의 숙명이 부딪친 자리입니다. 결국, 나그네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폭력의 근원-사냥꾼의 사냥을 중지시키는 일입니다. 그것은 설득일 수도, 물리적인 실천일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그네는 무언가를 희생해야 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교사는, 이 나그네의 자리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위의 책, 51~52쪽)
* 평화바닥 회원인 날맹님은 '평화도서관을 만드는 사람들' 등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도서출판 그린비 홈페이지에 포스팅된 글입니다. http://greenbee.co.kr/blog/982?category=8
* http://peaceground.org/zeroboard/zboard.php?id=ground&no=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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