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RI 국제회의를 다녀와서
WRI 국제회의가 인도에서 열리는 기간 동안 이명박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했다. 전 세계의 평화활동가들이 인도의 서쪽 구자랏에 모여서 개발과 군사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남부 첸나이와 북부 델리 등을 방문하여 인도에 진출해 있는 공장과 기업인들을 격려하기도 했고 인도 만모한 싱 수상을 만나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양쪽 모두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내용은 정반대였다. 전자는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삶을 빼앗기고 있는 사람들의 저항과 투쟁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후자는 인도를 저개발된 지역이 많아 한국 기업이 진출할 기회가 무궁무진한 시장으로 보고 12억 거대시장인 인도와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화를 나누었다.
워크숍과 토론을 통해 인도에서뿐만 아니라 파라과이, 콜롬비아, 콩고 등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발과 이로 인한 강제철거, 추방, 환경파괴, 공동체 붕괴, 국가폭력 등의 문제에 대해서 알게된 한국 참가자들은 한국 정부의 개발에 대한 관점과 행보, 그리고 자꾸만 언급되는 한국 기업들 때문에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풍부한 광물자원과 수자원을 가지고 있는 인도의 오릿사(Orissa)주에는 세계적 철강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그중에 한국의 포스코가 최근 역대 인도 외국인 직접투자액 사상 가장 큰 규모인 연간 1200만톤 규모의 제철소 건설과 제철소 운영에 필요한 관련시설 건설에 합의하는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포스코는 자가싱푸르(Jagatsinghpur) 지역의 토지를 구매하고 주민들을 이주시키려고 하지만, 이주를 원치않는 주민들은 땅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실제 인도지역에서 개발과 이주의 문제는 매우 첨예한데, 인도 최대기업인 타타Tata사(社)가 공장터로 선택한 칼링가나가르(Kalinganagar) 지역 역시 부족민들을 쫓아내는 과정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광물개발산업은 군수산업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알루미늄과 보크사이트, 철강 광산을 개발하고 있는 기업은 대부분 무기 생산 회사와 연결되어 있고, 투자회사도 마찬가지이다. 유명한 전쟁수혜자 기업인 베단타, 록히드마틴과 거래하는 타타Tata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실제로 알루미늄은 폭탄의 외피로 사용되며 무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핵무기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광산업, 금속회사는 무기회사의 주요 공급원이며 이 산업들이 전 세계의 전쟁을 부양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인도의 지하자원을 위해 들어오는 외국기업이 가진 무기산업과의 연계성이 바로 평화운동가들이 이 문제에 주목하는 첫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그들의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토착민을 배제한 개발이 야기하는 토착공동체의 붕괴는 그 자체로 21세기의 제국주의 침략이라 할 수 있다. 풍부한 자원을 가진 인도나 아프리카는 그 자원으로 인해 분쟁에 휘말리고 있다.
자연을 신처럼 여기는 부족민들에게 강제이주는 받아들일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외국계 기업의 편에 선 정부는 원주민을 내쫓기 위해 그들에게 마오이스트(사회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여 진압하고,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유혈사태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WRI는 회의 기간 중에 차티스가르(Chhattisgarh) 지역에서 벌어지는 분쟁에 대해 성명을 내기도 했다. 정부와 정부가 지원하는 군사조직과 마오이스트 사이의 군사적 분쟁으로 인해 지금까지 1천명 이상이 죽고 적어도 10만명 이상이 쫓겨난 차티스가르의 사태는 '국내난민'으로는 최대 규모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낙후된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개발은 필요한 것이며 이 모든 것은 결국 인도 사람들의 복지를 위한 것이라는 명목 하에 정당화되고 있다. 특히 인도 정부가 인도의 원주민들이 아니라 초국적 기업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한다. 회의 도중 이 대통령의 인도 방문에 맞춰 두산중공업이 차티스가르 지역에 11억달러 규모의 석탄 화력발전소 건설공사 계약을 체결했다는 기사 속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미 심각한 강제철거와 이주의 문제를 겪고 있는 차티스가르 지역에서 한국기업은 또 어떠한 모습을 보일지 걱정부터 앞섰다.
한국 기업은 무기문제에 있어서도 역시 빠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한국 대기업들이 무기를 생산하고 수출하지만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무기거래에 있어서 상당히 유명한 나라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의하면 한국은 지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 동안 무기수입 총액 기준으로 중국과 인도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또한 방위사업청은 2010년도 무기수출 목표액을 전년보다 25% 증가한 15억달러로 설정하고, 2012년까지 세계 10대 방산수출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삼고 있다.
기업이 무기를 만들고 수출하는 이유는 당연히 이윤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무기를 팔아 이익을 얻는다'는 것을 넘어서서, 무기를 팔기 위해 무기가 필요한 상황을 원하기 때문에 문제는 심각해진다. 또한 그렇게 수출된 무기는 그 자체로 분쟁의 원인이 되며, 결국 무력충돌과 전쟁을 촉발하는 매개체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점이 지적되어온 것은 오래된 일이라 이 문제에 주목하고 무기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전세계 곳곳에서 있어왔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별로 주목하지 못해왔다. 우리는 잘 모르고 있지만, 우리 기업이 만드는 비인도적 무기에 대해 국제평화운동의 관심은 상당했다. 최근 벨기에의 한 평화단체가 발행한 '집속탄 생산기업 투자자 목록'1)에서는 한국에서 집속탄을 생산하고 수출하는 한화와 풍산을 주요한 감시 기업으로 꼽고 있으며, 이 기업에 투자하는 국민은행, 신한은행, 국민연금, 미래에셋, 천안북일학교재단 등의 리스트를 게시하고 있었다.
'전쟁수혜자에 저항하는 초국적 캠페인-무기거래 반대운동과 지역공동체간 연대형성'이라는 워크숍에 참여했는데, 오랜 활동경험을 가진 '무기거래에 반대하는 유럽네트워크(ENAAT)'의 사례와 함께 다른 지역에서 진행된 무기거래 반대운동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2006년 독일에서 열렸던 WRI 워크숍에 참여한 몇몇 활동가들의 제안으로 무기거래에 반대하는 평화활동가와 병역거부자들이 모인 '무기제로팀'이 2년 전부터 모임을 해오고 있다. 아직 미약하기는 하지만 작년부터는 집속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평통사, 국제민주연대 등 집속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하는 단체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집속탄에 대해 알리고 집속탄금지협약에 가입을 촉구하는 본격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을 듯하다.
선진국 대부분이 중단한 원자력발전소를 팔아서 돈을 벌고, 사람 죽이는 무기를 팔아서 돈을 벌어도, 오로지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과의 싸움은 힘들 수밖에 없고, 특히나 무기거래와 같이 '안보'영역에 해당하는 이슈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끈기있게, 또한 초국적인 전쟁수혜자 기업들에 대항하는 초국적인 연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저항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무기거래의 반인도성을 꾸준히 알려나가고, 개발보다 더 중요한 생존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 과정에서 군사화되고 폭력적인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의 평화운동, 할 일이 많다.
* 각주
1) "Worldwide investments in cluster munitions. A shared responsibility"
원본출처
http://www.netwerkvlaanderen.be/nl/files/documenten/campagnes/bankenenwapens/Het%20hele%20rapport.pdf
* 평화바닥 후원회원인 여옥님은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http://www.withoutwar.org/)의 소식지 27호에 실려 있습니다. http://www.withoutwar.org/bbs/zboard.php?id=www_letter
* http://peaceground.org/zeroboard/zboard.php?id=ground&no=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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