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시선

[염창근] 도서관 청소부라는 직업

평화바닥 2010. 12. 24. 15:28

 

도서관 청소부라는 직업

염창근



도서관을 시작한다. 그동안 투잡을 하면서 몸이 고달팠는데 또 새로운 일이라니. 그래도 이번에 새롭게 시작한 도서관 일은 오래 전부터 무척 바랐던 일일 뿐만 아니라 적성에도 맞고 보람도 있어 몸이 힘든 문제는 저만치 있다. 공간민들레에서 도서관 만들고 책방지기(사서)를 같이할 때 진작에 그 맛을 알아버린 터. 도서관 일에 비한다면 오히려 지금껏 해 오던 두 가지 일은 어쩔 수 없이 한 측면이 없지 않을 정도다. 신념에 따라 살기 위해 평화활동을 해야 했고 먹고살기 위해 책 만드는 일을 해야 했으니. 게다가 책 만드는 일은 보람이 별로 크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저자의 원고를 조금이라도 더 빛내기 위해, 그리고 실수가 없도록 수없는 손길을 요했다. 적성에는 맞아서 다행이지, 내가 만든 책에 내가 없다는 점에서 살짝 서글픔을 준다. 게다가 웬만해선 잘 팔릴지도 않고 사람들이 별로 읽지도 않는다. 그러면 속만 상한다. 평화활동은 정확히 반대다. 성과를 떠나 신념에 따르는 일이라 보람은 크지만 적성에는 잘 맞지 않아 고달플 때가 너무 잦다.

도서관은 오랫동안 그려오며 향후 나의 최종 직업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껴두었던 것이다. 인생 전반기를 마치면 후반기에 하려고 꿈으로 쟁여 놓고 있었던 도서관 운동을 어쩌다보니 여러 친구들이 뜻을 보태었고, 부족하나마 조금 서둘러 시작하기로 하면서 드디어 발을 내딛는다. 작으나마 공간을 마련하고도 몇 달째 단장만 하고 있지만 개관의 꿈은 더 커져 간다.

구체적으로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대학원까지 마치고도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고민스러웠던 때, 불연듯 초등학교 시절부터 드나들었던 마을의 공공도서관이 떠오르면서 시작되었다. 그때쯤 ‘인디고 서원’ 이야기(『인디고 서원, 내 청춘의 오아시스』)를 접하게 되었고, 때마침 감옥을 앞두고도 있었다. 인디고 서원 이야기는 격렬히 나를 자극했고, 감옥을 다녀오면 더 막막해질 생의 앞날에 도서관은 막장에서 나를 구할 희망처럼 순식간에 부상했다.

돌아보면 나를 키운 건, 식구에겐 미안하지만, 5할쯤은 고향 마을의 커뮤니티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나무들이 길을 만든 것처럼 보일 만큼 많은 가로수들, 길 너머 펼쳐 있는 논밭, 그리고 이런 자연환경 속에서 꾸밈없이 이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고향에서 유일했던 그 공동도서관은 고향 마을의 한가운데쯤에 있었다. 그리고 좀 떨어진 곳에 있던 다살림이라는 찻집은 책방을 만들어 공개해 놓고 있었다. 이윤이라는 목적보다 자연스럽게 서로를 돌보는 관계가 있었던 커뮤니티, 세상에는 경쟁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고 그래서 세상의 아름다움은 아주 많다는 것을 알려 주는 도서관, 그리고 마을의 사람들과 선생들과 친구들과 자연환경이 그냥 그대로 자연스럽게 감수성을 길러 주었다. 그리고 작가의 꿈도 꿀 수 있게 했다(물론 될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커뮤니티와 도서관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다. 내가 받았던 그 혜택 덕분에 나도 다른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면 좋겠다는 기특한 생각까지 하게 해 준 것이다.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위로도 받고 도움도 받고 지식과 감정을 나누지만, 책을 통해서도 그러하다. 그래서 책을 벗 삼는 일은,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한 줌 삶의 여유를 주고 긴박감을 풀어 넉넉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게 아닐까. 숨을 돌리게 해 주어 꽉 죄인 세상살이에 자기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도, 눈을 돌리어 눈앞의 급급한 처사가 아니라 먼 날, 먼 곳까지 보게 하는 그윽하고 너른 눈길을 선사하는 것도 책이기에 가능할지 모른다. 책 읽는 누이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었듯이.

처음에는 친구 따라 갔던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공짜로 마음껏 볼 수 있어서, 나중에는 도서관에서 빌린 외국소설책을 읽고 있는 옆집 형들의 모습이 멋있어서 점점 다른 책들에도 손이 갔고 그렇게 책이 주는 재미에 빠질 수 있었다. 지적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갖가지 문학에는 이 세상의 아름답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이제 나도, 아니 우리도 누군가에게 이런 재미를 주는 도서관을 시작하려 한다.

우리가 시작하는 도서관은, ‘평화도서관-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도서관을 통해 평화의 세상을 꿈꾸어 보자는 바람과, 도서관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그런 세상을 향한 꿈과 상상력을 심어 줄 수는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담았다. 마치 하나하나는 보잘것없지만 세상을 푸르게 만드는 원초적인 힘을 간직하고 있는 나무처럼 평화의 세상을 만들, 평화를 바라는 사람을 생각해 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도서관을 과연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도서관은 스스로 그런 힘을 간직하고 있다고 믿으려 한다. 도서관은 그 자체가 다원론이자 다양한 지식과 세계가 있고, 책이 있는 공간이기에 사람들에게 연대와 커뮤니티를 이루게 하는 힘을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서관은 또 하나의 특별한 매력을 간직한 곳이다. 도서관 자체가 지닌 공공성 때문에 소외받는 자, 가진 게 적은 사람이 찾아갈 수 있는 공간 중에 하나라는 점이 그것이다. 돈이 없으면 사실상 갈 곳이 거의 없는 대도시의 시민들, 신체적 장애나 사회경제적 배경이나 연령이나 인종 등으로 배제와 차별을 받는 사람들에게 작은 배려를 줄 수 있는 공간이다.

유럽에는 입구 전면에 평화라는 단어를 여러 언어로 써 놓은 도서관이 많다고 한다. 책을 읽는 어린이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도서관의 지향이 분명하게 자리해 있다. 유럽에서 병역거부운동도 전쟁을 반성하게 하는 것도 모두 책을 읽으며 인문과 사회를 생각했던 사람들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책을 읽는 아이들은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힐 것이고, 책을 읽으면서 길러지는 상상력은 타인에 대한 공감력을 기를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는 힘,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도서관을 만드는 일이 아직은 막막하기만 하지만, 일차적으로 사서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사서는 도서와 공간을 관리하는 기본적인 일에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육하는 일을 짜는 역할까지 온갖 일을 하기에 도서관은 사서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보가 홍수처럼 떠다니는 시대 도서관의 사서는 가치 있는 정보를 알려주고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데 막상 이런 일에 대해 생각하면 어려워지고 답답해진다.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누가 올 것인가’부터가 고민이다.

그러다 한 사람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찾던 마을의 공공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언니, 누나로 불렀던 사서는 도서관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처럼 보일 정도로 언제나 청소와 서가 정리가 최우선이었다. 혼자서 대출과 반납, 서가 정리까지 도맡아 했지만 늘 책을 한 손에 들고 틈틈이 읽고 있었다. 이 사람 덕분에 도서관은 작고 평범했지만 편하게 찾아갈 수 있었던 곳이 되었다. 가끔씩 내가 빌리던 책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 주었다. 그럴 때면 왠지 기분이 좋았다.

청소가 빛이 나는 직업이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살 수 없었던 가난한 학생에게 위로를 주고 꿈꾸도록 해 준 도서관과 사서. 청소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편안한 도서관이 된다면, 점점 그 다음도 가능해질 것이다. 지역에서 지역을 넘고 사회와 연대하는 도서관, 평화로 연결하는 도서관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이 마을을 만들고, 마을이 평화를 만든다는 평화도서관의 거창한 모토도 어느 날 실제로 우리 앞에 나타나 있을지 모르는 것 아닌가.



* 평화바닥 회원인 염창근님은 '버마어린이교육을생각하는사람들','평화도서관을 만드는 사람들' 등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http://www.withoutwar.org/)의 소식지 28호에 실려 있습니다. http://www.withoutwar.org/bbs/zboard.php?id=www_letter

* http://peaceground.org/zeroboard/zboard.php?id=ground&no=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