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시선

[바닥의 시선] 폭력의 소용돌이 원하는 미국의 계산

평화바닥 2007. 7. 12. 17:08

후세인 사형집행과 폭력의 소용돌이 원하는 미국의 계산

 

염창근

 

후세인 사형집행의 문제점들
후세인이 죽었다. 전 세계 모든 주요 언론들이 그의 죽음을 즉시 타전했다. 그러나 영웅과 독재자의 이름이 동시에 박혀있는 그가 미군에게 체포된지 3년만에 교수형에 처해진 것은 단지 뉴스의 한 장면으로 처리될 수는 없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주의 인물 한 명이 죽었기 때문인 것도 아니며, 숙적이었던 집권 시아파 정권과 미국 부시 정권의 보복 살해이기 때문만도 아니다. 최근에 사망한 독재자 피노체트(전 칠레 대통령)가 그의 죽음으로 가져온 파장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이야기이다.
후세인은 지난 12월 30일 새벽에 교수형에 처해져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이라크 정권은 그를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서 그날 아침에 다시 한번, 저녁에 또 다시 한번 그를 죽였다. 아침에는 사형집행을 공식적으로 촬영한 카메라 영상을 이라크 공영방송에 보내면서 다시 죽였고, 저녁에는 비공식적으로 촬영된 휴대전화 동영상을 인터넷에 방영하면서 또 한 번 더 죽였다. 계속되는 폭력으로 참혹해진 땅, 이라크에서 현재진행 중인 폭력의 한가운데서 벌어진 공개 살인행위였다. 이는 폭력을 선도하는 폭력행위이자 평화의 꿈조차 뽑아버리는 행위이다.
교수형 집행 자체만으로도 이미 문제가 있다. 사형 자체가 이미 살인일뿐더러, 이라크는 2003년에 사형제를 폐지했음에도 후세인이 체포되어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사형제를 부활시켰다는 점, 기소된 8가지 사건 중 한 사건(88년 두자일 마을 학살 사건)에 대한 혐의만으로 사형이 확정되자마자 4일만에 곧장 집행한 점, 최종 항소심이 불과 50일 만에 끝났고 피고인의 최후진술도 없었다는 점, 사형판결을 함께 받은 다른 2명은 뺀 채 후세인만 따로 2006년을 넘기지 않고 상징적으로 사형시킨 점 등등.
더욱 심각한 문제들이 있다. 사형집행을 공개하기 위해 카메라로 촬영했다는 점, 8가지 학살 사건의 혐의로 기소되었음에도 다른 범죄에 대한 진실규명은 하지도 않았다는 점, 사형집행을 이슬람 최대 명절인 ‘메카 성지 순례 기간’인 ‘하지’ 때 시행했다는 점, 보란 듯이 죽음을 이라크 전 사회와 전 세계에 방영했다는 점 등등.
미국은 후세인 사형 판결이 나자 즉시 그를 이라크 정부에 인도했다. 그냥 죽이라는 것과 다름없는 의미였다. 사형집행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후세인은 미군 감독 하에 있다며 인도를 부인하는 입장을 취했던 미국이었다. 미국은 이미 이라크 정권의 사형집행에 대한 의지를 알고 있었다. 후세인을 조속히 처형하기 위해 사실상 합작한 것이었다. 게다가 미국은 후세인의 학살 사건에 대해 증거조사와 법적 지원을 위해 수백 명의 미 국무부·법무부 직원을 동원했고 수백억 원을 쏟아부었음이 밝혀졌다. 이는 이라크 자체 조사경비의 수십 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서둘러 후세인을 제거하고 싶었던 미국의 의지가 투여된 것은 아닐까. 1987-88년 당시 후세인이 수십만 쿠르드족을 독가스 등 화학무기로 학살했던 사건, ‘안팔 작전’ 사건에 대한 조사와 재판이 별도로 4개월째 진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 사형집행되었다는 것은, 바로 그 화학무기를 후세인에게 제공해왔던 미국이 자신의 책임이 드러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진행된 것임이 분명하다. 미국은 91년 소위 걸프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후세인에게 각종 살상 무기를 제공해왔던 일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란에 대한 견제세력을 키우기 위해 아버지 부시는 82년부터 이라크와 후세인에게 무기를 제공했고, 이라크 침공을 주도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은 83년에 후세인을 만나 군사 지원을 밀약했던 당사자였다. 미국은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삭제시키는 동시에 이라크 무장세력이라는 지금의 재앙도 삭제하고 싶어서 후세인 처단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미국 내에서 지지를 잃고 있는 부시 정권이 후세인이라는 독재자를 처형함으로써 자신의 전쟁 행위에 정당성을 억지로 부여하고자 하는 의도와 2006년을 끝으로 이라크 정책에 새로운 국면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를 노리면서, 보너스로 이란-시리아-북한 등 악의 축들에게 경고하는 효과를 가지고 싶었겠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오히려 문제만 키우고 그 해결에서 더욱 멀어지게 할 뿐이다.
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자신이 후세인 사형집행을 주도했음을 일부러 보여주기 위해 집행서에 서명하는 모습을 처형장면과 함께 방송에 내보였다. 수니파 무장세력의 정신적 구심이었던 후세인을 처형하는 일은 자신의 지배력을 확고히 하는 것이라고 믿었을 말리키 총리는 형 집행에 항의하는 수니파의 바트당 등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속한 사형집행을 진행했다. 작년 1월에 물러난 주심판사가 ‘시아파 정치세력이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고 폭로했던 것처럼 이미 오래 전부터 후세인에게 탄압받았던 시아파에게 자신을 중심으로 단결하도록 만들기 위해 처형을 서둘러 이루어낸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보란 듯이 그 실체를 보여줬다. 결단력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사형집행 명령서에 붉은 글씨로 서명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이미 미 당국으로부터 자질과 지도력에 대해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얼마나 결단력 있는 지도자인지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수니파에게 후세인이라는 구심력을 빼앗는 동시에 후세인 시절 군인들에게는 보안군 참여를 보장하고 연금제공 등의 정책을 제시하며 수니파를 잠재우려는 시도들이 성공한다면, 미국도 자신을 계속 지지-지원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 폭력사태를 말리키 총리에게 전가시킬 수 있고 말리키 총리는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후세인 처형은 이해가 맞아 떨어진 정치행위였던 셈이다.
물론 후세인에게 학살의 책임이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동안 자신의 반대세력이었던 시아파 정치인들과 공산당 정치인들을 숙청해왔고, 수십만의 시아파 민간인들과 쿠르드족을 화학무기 등으로 집단학살했으며, 이란과 쿠웨이트 등을 침공하고 전쟁을 벌이며 무수한 민간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후세인은 독재자이자 학살자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응당한 책임을 져야한다. 하지만, 제대로된 책임규명과 진실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정치적 의도로 처형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사형은 하나의 살인이며 후세인이 자행한 학살과 전쟁과도, 부시가 벌인 전쟁행위와도 결국 같은 것이다. 게다가 폭력으로 처참한 상황에 놓인 이라크에서 살인과 폭력을 스스로 실행하는 사형집행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폭력을 정당한 것으로 인지시키게 만드는 매우 큰 문제를 양산하고 만다. 게다가 사형과 집행의 ‘공개’는 후세인 독재를 비롯한 과거를 극복하고 평화를 만드는 일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폭력행위이며 이를 널리 공표한 것이기에, 폭력은 더욱 심각하게 이라크 사람들의 몸과 마음 속에 새겨넣고 말 것이다.

 

폭력의 소용돌이 키우려는 미국의 폭력
후세인 사형은 2003년 12월 미군에게 체포되는 순간 이미 예견되어 있었을 지도 모른다. 미국은 그것을 적당한 때에 이용하기 위해 아마도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을 것이다. 미국은 말리키 이라크 총리의 의도도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형집행의 결과가 어떠할지, 영상 공개의 파장이 어떠할지, 이라크 사람들과 각 세력들의 반응이 어떠할지에 대해서도 모두 분석을 마쳤을 것이다.
부시 정권은 후세인 사형에 따른 시아파·쿠르드족의 환영과 수니파의 분노를 오히려 바라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오랫동안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을 조장해왔고 극도의 빈곤상태를 유지시킴으로써 폭력사태를 일으켜냈던 것처럼 다시 이러한 갈등을 일으켜내려고 하는 것이다. 오히려 갈등을 더욱 증폭시켜 제대로된 혼란국면을 만들고 싶은 의도인지도 모른다.
과연 말리키 총리와 이라크 집권 시아파 세력의 생각대로 후세인 처형이 수니파 저항세력의 구심력을 잃게 하고 저항을 최소화할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물론 일부 수니파 사람들은 이라크 정부가 포섭정책을 편다면 그들에게로 돌아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니파 세력들은 이미 오랫동안 권력의 지분을 가져본 사람들이고 지금은 최하위 계층으로 떨어진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에 시아파에 협력하며 살아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오히려 시아파와 미군 쌍방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더욱 불안을 느끼는 수니파는, 이번 후세인 처형을 계기로 단순히 감정적 지지를 넘어 저항세력들에 실제로 지원하거나 합류할 가능성만 더욱 커졌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수니-시아’라는 경계선을 여전히 결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함께 살아가야할 이웃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후세인 처형으로 수니파의 복수 선언은 더욱 커지고 있으며 미 연합군을 향한 공격뿐만 아니라 그에 협력하는 이라크인들에 대해서서도 응징과 공격이 심해지고 있다. 이제 시아파와 수니파의 분쟁은 더욱 극심해질 것이다. 특히 휴대전화 동영상에 녹음된 ‘무크타다’의 연호와 ‘지옥에 가라’ 등의 말들은 수니파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 것이다. 시아파 민병대들이 그동안 수니파를 공격할 때 외쳤던 ‘무크타다’는 시아파 영웅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수니-시아의 대결로 몰아가게 할 자극이 되기엔 충분한 효과가 있다. 극심한 모욕감은 수니파 이라크인들에게 공동으로 전달될 것이며 자연스럽게 폭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라크를 장악하려는 시아파 정치세력들을 향해 수니파는 본격적인 복수를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모두 미군의 계산이라고 추측된다.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파타를 동시에 키우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분열하도록 만들어왔던 그 계산처럼 이라크에도 적용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한쪽은 공개적으로 협상-지원하는 한편 다른 한 쪽은 스스로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몰래 내버려 두어, 두 파가 서로 대립하는 세력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본격적인 내부 투쟁이 일어만 난다면 진짜 적은 잘 보이지 않게 되는 절묘한 효과가 생긴다. 양측은 서로 대립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을 것이며 정작 진짜 적에게는 저항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미국에게 지금의 이라크의 혼란과 재앙은 이미 계산된 전략이었고 아주 바람직한 방향인 것이다. 말리키 총리는 치안유지에 힘쓰고 싶겠지만 앞으로의 상황을 감당하기는 벅차 보인다. 그리고 상황 악화는 이라크 정권의 대미 의존을 더욱 높일 것이다.
아직은 그대로인 ‘미국 대 이라크’의 전쟁 구도가 ‘시아파 집권세력 대 수니파 저항세력’ 또는 ‘이라크 정부 대 저항세력’의 구도로 짜여진다면, 미국은 혼란을 빌미로 ‘치안 유지’라는 주둔 명분을 거저 가지게 되며 애초의 목표였던 석유 획득도 계속해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혼란스러울수록 혼란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미국밖에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할 것이며, 갈수록 이라크는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꼴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친미파는 더욱 미국에 의존하고, 반미 시아파와 수니파는 혼란의 책임을 지게 되고 결국 어느 때에 가서 진압되고 말 것이다. 이는 한국의 사례만 봐도 얼마나 비슷한지 알 수 있다. 해방과 한국 전쟁 후 미군정이 누구를 지원하고 어떻게 각 세력들을 대립시키고 처리해왔는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갔는지를 돌아보면 비슷한 방식임을 알 수 있다. 결국 미국에 의존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음을 깨닫게 하려는 저의가 분명히 깔려있다.
미국이 곧 새로운 중동정책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미 국민들이 요구하는 철군이 아니라 반대로 증파일 것이라고 한다. 더욱 패권을 쥐고 있으려는 계획이다. 후세인을 처형함으로써 2006년을 끝으로 미국은 자신의 어려움을 마감하고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것은 이라크의 분열과 확고한 패권 장악이 목표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더욱 이라크에 평화는 사라져갈 것인가?
그러나 후세인을 처형한 미국이나 이라크 정권도 스스로 알아야할 것이 있다. 한때 철권 통치로 패권을 구가했던 후세인은 결국 그 패권다툼에서 패배해 삶을 마감했다. 후세인이나 부시 같은 인간은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물음도 생겨나긴 하지만, 패권다툼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패권을 위해서는 결탁과 제거를 반복해서 사용하지 않을 수 없지만 결국 그 패권으로 말미암아 서로서로를, 그리고 스스로를 몰락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그 속에서 죽어가는 민중은 어떻게 평화를 만들어갈 것인가.


2007년 1월 5일

 

* 회원이신 염창근님은 '평화바닥', '이라크평화를 향한 연대' 등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