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의 섬과 군사기지의 섬
- 제주 군사기지 문제에 대한 고민 -
성주
‘고통에 대한 예의’. 언젠가 어떤 사건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당시 나는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나에게는 그 고통이 글의 소재였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그것이 곧 삶 자체였다. 그래서 그 고통을 내가 얼마나 겸손하게 다룰 수 있을지 우려되는 부분이 많았다. 제주 군사기지 문제도 마찬가지다. 토론회에 참여하면서, ‘육지 것들’인 내가 이 문제에 얼마나 겸손하게 접근할 수 있을지 조심스러웠다(게다가 토론자 중에는 제주가 고향인 분도 있었다).
“평화의 섬 제주와 군사기지는 공존할 수 있는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가 <시민, 안보를 말하다>에서 던진 물음이다. 이와 관련해 토론회 당일, 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 국방부가 주최한 토론회였다면 그 물음이 이렇게 바뀌지 않을까. “평화의 섬 제주와 군사기지는 공존할 수 ‘없’는가?”
“평화의 섬 제주와 군사기지는 공존할 수 있다”
2005년 1월, 참여정부는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지금은 군사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 ‘세계평화의 섬’과 ‘군사기지의 섬’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두 가지는 모순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평화의 섬 제주와 군사기지는 공존할 수 있다.” 단,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된 고민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는 ‘평화=군사력’이라는 생각을 전제로 행동하는 듯하다. 평화는 곧 군사적인 힘에 의해 보장된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현실주의/남성성의 세계관이다.
둘째, 거시-미시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국가-개인 차원의 평화를 명확히 위계화시키면서,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각 개인, 즉 일차적으로 제주 분들의 일상적 평화를 무시하고 있다(여기에서 국가가 생각하는 평화와 개인이 생각하는 평화는 그 개념이 다를 수 있다. 각 개인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셋째, 남성중심의 안보논리가 강화될 수 있다. 기존의 평화/안보 개념에서 출발하고 있는 기지건설은, 주류 안보담론의 근간이 되는 (비장애 이성애자) 남성중심의 시각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제주이기 때문에? 기지이기 때문에!
참여연대는 해군기지 건설반대에 대한 군사적 이유를 발표하면서, “섬보다는 본토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이 군사 전략적으로 설득력 있는 것이다”고 지적했다(2005년 11월 21일). 국방부 장관에게 보낸 공개질의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들어 있다(2006년 11월 24일). 또한 참여연대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주의 상징성, 즉 ‘4·3’의 기억에 근거해 기지건설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다. 내가 보기에 여기에는 약간 위험한 맥락이 포함되어 있다.
첫째, 참여연대의 논리는 ‘제주 이외의 지역에는 기지건설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전제를 포함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략적 차원에서 제주보다 나은 조건의 지역이 있다면, 그곳에는 기지를 건설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좀더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둘째, 4·3 담론 역시 ‘제주 이외의 지역은 괜찮다’는 논리를 제공할 수 있다. 제주의 독자성/특수성에 기반한 논리는, 그러한 특성을 지니지 않은 지역을 타자화시키며, 이는 곧 다른 지역에서의 기지건설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이와 관련해 좀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광주의 사례에서 보듯이, 그러한 담론은 분명히 효과가 있다. 2006년 11월, 광주에 배치됐던 패트리어트 미사일 부대가 23개월 만에 조기철수를 했다. 원래는 2007년 11월 철수 예정이었으나, 광주 5·18과 반미정서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일찍 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부대반대 구호 중 하나는 “오월 광주가 분노한다”였다(하지만 이 사례는 어디까지나 완전한 철수가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의 ‘이전’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앞에서 지적했던, ‘이외의 지역은 괜찮다’는 논리와 관련해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또한 4·3과 관련해 약간 다른 맥락에서 덧붙이자면, 군사기지 문제는 국가가 제주의 고통에 대해 얼마나 겸손하지 못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4·3과 관련,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공식 사과했다(2003년 10월 31일).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위령제에 참석하기도 했다(2006년 4월 3일). 그런데 지금은 군사기지 건설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군대에 얽힌 제주의 고통에 얼마나 겸손하지 못한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국가의 사과가 얼마나 진실되지 못한 것이었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누구에 의한-무엇을 위한’ 평화인가?
“아무리 평화를 지키고자 해도 스스로 평화를 지킬 능력이 없으면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에 배치될 수 있는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 진수식에서 한 말이다(2007년 5월 25일). 여기에서 “평화를 지킬 능력”이란 이지스함으로 상징되는 군사력을 말하는 것으로, 앞에서 말했던 ‘평화=군사력’이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해군기지는 ‘전쟁을 하러 오는 게 아니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왔다’고 해석을 하면 평화의 섬에 어울린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가 제주 당원협의회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2007년 5월 31일). 이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성폭력을 사랑이라고 여기는 것과 비슷한 사고방식이다. 그리고 남편이 아내를 때릴 때 ‘사랑해서 때린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개념이 ‘누구에 의해서-무엇을 위해서’ 구성되고 작동하느냐이다. 제주 군사기지 문제는 평화/안보 개념의 재구성이 왜 필요한지를 말해주고 있다. 군사기지가 가져다 줄 평화는, 누구에 의한-무엇을 위한 평화인가?
※ 이 글은 참여연대 <시민, 안보를 말하다>(2007년 6월 5일)에서의 토론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후원회원이신 성주님은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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