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시선

[여옥] 오늘 엽서 한 장, 어때요?

평화바닥 2007. 11. 19. 14:01
오늘 엽서 한 장, 어때요?


여옥




지난 국방부의 발표 이후 한동안 몹시 떠들썩했다가 다시 잠잠해진 요즘, 간혹 사람들은 이렇게 묻곤 한다. “대체복무제도 된거 아니었어?”
아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어쩌면 제대로 가기조차 힘든 길일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리고 여전히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있다. 전과자를 양산하는 현행 병역제도에 문제가 있다며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보내지 않고 대체복무를 시키겠다는 국방부의 입장이 이미 밝혀진 이 상황에서, 이제는 더 이상 범죄자가 아닌(물론 예전에도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800명이나 감옥에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또다시 겨울은 다가왔다.

두 세 명의 병역거부자라도 만나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공통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무척 다양하다. 그래서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이 모두 이렇다 저렇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을 꼽으라면 외부와의 단절감 - 그로 인한 소외감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감옥이 아닌 바깥에서 일상생활을 잘 하던 사람들도 종종 심한 외로움을 느끼고 잠적도 하고 슬럼프도 겪는데, 심지어 감옥 안에서는 오죽 할까. 병역거부를 고민할 때부터 또는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으면서도 막상 부딪히게 되는 낯선 환경과 낯선 상황들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감옥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사소한 갈등이나 불편한 시선들로 심리적인 압박이 심해지는 그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외부와의 소통’이다.


단절된 상황에서 편지는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 편지를 받고 기뻐하는 해리포터의 모습

다들 알다시피, 수감된 병역거부자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감옥이라는 공간도 대부분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총을 들 수 없는 자신의 양심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해야하는 위치에 처한 사람에게 외부에서의 관심과 지지는 큰 힘이다. 예전에 한 병역거부자는 폐방점검을 하고 편지를 나누어주는 오후 5시를 손꼽아 기다리게 되면서 자신이 징역살이를 혼자 힘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하고있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전해왔다. 이런 이야기가 담긴 답장을 받았을 때의 기분은 어떨까? 소통은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 감옥 안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마음을 나누는 대화가 오고갈수록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관계가 싹튼다.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군대 대신 감옥을 택한 병역거부 수감자와의 진지한 소통은 평화에 대해 배워가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소통은 수감자에게 심리적인 안도감을 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불합리한 상황에서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감옥특성상 정보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 억울한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부와의 긴밀한 소통이 있는 수감자의 경우는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인권단체가 개입하기도 한다. 그래서 민가협이나 인권단체에서 계속 소식지를 보내오거나 편지가 꾸준히 오는 사람에게는 교도관, 재소자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좀더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야생초편지에서는 저자가 감옥 안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느껴진다

감옥이라는 독특한 공간에서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기도 하고, 많은 것을 깨닫기도 하고, 작은 것에 감정이입을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고민, 생각들을 통해 변화하는 모습은 소통하는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런 소통의 결과물들은 수감자 스스로에게도, 지지하고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결과물로 남게 된다. 출소한 이후에는 징역생활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던데, 남겨진 기록은 축적되어 역사가 되기도 하고 같은 길을 가려는 사람에게 안내서가 되기도 한다.

소통은 주로 편지로 이루어진다. 면회는 시간이 짧고 횟수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소통은 편지가 중심이 된다. 인터넷을 이용한 전자서신을 이용하면 이메일 쓰듯이 편리하게 소식을 전할 수 있다. 가끔은 정성스런 손글씨로 편지를 보낸다면 서로 더 애틋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여행지에서 보내는 엽서나 현상한 사진 뒤의 메모, 중요한 기사를 표시해둔 잡지는 수감자에게 더없이 좋은 선물일 것이다. 간혹 소통의 시간차 때문에 힘들어할 수도 있다. 편지를 받고 연락을 하고 의견을 나누고 다시 편지를 보내는데 걸리는 며칠은 안에서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에겐 너무 길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빠른 답장을 해야하는 상황일수록 서두르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 잘못하면 사이가 더 나빠질지도 모른다.

올해도 12월 1일 평화수감자의 날이 다가온다. 바쁘다보면 그 편하다는 전자서신 한 통 쓰는 것도 쉽지가 않다. 이렇게 기회가 마련될 때 쓰는 것이 상책이다. 나의 엽서 한 장이 수감자들에게는 감옥 생활을 견뎌낼 힘이 되곤 하니까. 그리고 늦은 귀가길 우편함에 꽂혀있는 편지 한 통은 나에게도 삶의 활력이 되어줄 테니까.



* 현재 수감된 병역거부자의 주소를 알고싶다면
http://www.withoutwar.org/bbs/zboard.php?id=www_colist

* 12월 1일은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ar Resisters' International, WRI)에서 주관하는 평화수감자의 날(Prisoners for Peace Day)이다. 이날에는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에서 집계한 전 세계 평화수감자들의 명예로운 명부가 발표되고, 특별히 한 국가나 지역 혹은 평화이슈를 선정해 그 곳의 평화수감자들의 현황과 평화이슈 현안을 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평화수감자의 날 행사는 1956년 12월 1일에 처음 시작되었고, 한국에서는 2003년부터 꾸준히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자전거 행진과 반군사주의 패션쇼가 열린다. 관심있는 분들은 http://corights.net/brokenrifle/

* 예비회원이신 여옥님은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원문 : http://peaceground.org/zeroboard/view.php?id=ground&no=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