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시선

[강유인화] 군사회된 남성성을 강요하는 징병제도를 다시 묻는다

평화바닥 2007. 12. 19. 02:14
 


군사화된 남성성을 강요하는 징병제도를 다시 묻는다


강유인화




I don't want to die...

두려움, 비탄, 어두운 희망이 묻어나는 절망의 외침. 죽음을 목전에 둔 故 김선일의 절규는 위로될 수 없는 깊은 슬픔으로 다가온다.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이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두려움에 떨며 절규하는 목소리 앞에서 한국정부는 파병방침에 변함없음을 재확인하였다. 김선일은 죽음 직전의 이미지로 고정되어 반전운동의 상징으로 ‘승화’되었다가 잊혀져갔다. 애석하게도 그의 죽음은 충분히 애도되지 못했다. 개인들의 일상을 바쁘게 돌아가고, ‘우리’는 그의 죽음을 애도할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 쓸쓸한 죽음 위로 전쟁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겹쳐진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그동안 이라크는 삶의 터전이 철저하게 붕괴되었다.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최악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은 가난한 유랑민으로 전락하여 지구 곳곳을 떠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라크 내 220만, 시리아에 최소 140만, 요르단에 75만 명 등 약 460만 명 이상의 난민이 존재한다고 보고한다. 매달 6만 명 이상이 난민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는 전체 인구의 15% 이상을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전쟁으로 삶이 유예되고, 절망과 분노가 쌓여가는 이라크에 한국군대는 ‘평화’의 이름으로 주둔 중이다. 미군 점령 하의 이라크에서 한국군도 결국은 분쟁을 조장하는 침략군의 위치에 서있다. 한국정부는 ‘평화를 위한 전쟁이란 없다’고 ‘제발 군대를 보내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정부는 올해도 예외 없이 파병연장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침략자의 편에서 무력분쟁에 개입하는 군대, ‘고통에 연대하자’는 다른 목소리가 삭제되는 이 사회는 탈(脫)군사화된 민주주의를 향한 근본적 물음에 마주해야만 한다.
여전히 군대라는 존재는 군사화의 핵심에 위치해있다. 한국사회는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증진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모든’ 남성이 군사활동을 수행해야하는 강제징집제도의 변화에 대해서는 제대로 논의해본 적이 없다. ‘평화를 위한 전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평화를 위한 군대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군대는 군사훈련을 통해 전쟁을 준비하는 곳이기에 대량살상의 결과를 가져올 전쟁과 군사훈련에 동참할 수 없다’는 병역거부자들의 공개적인 선언 뒤에 따라온 변화란 고작 사회복무제를 통해 이들을 기존 제도에 편입시키려는 것뿐이다. ‘죽고 싶지 않다’는 절망의 외침, 전쟁으로 일상을 잃은 사람들, 살상훈련을 받지 않겠다며 군인됨을 포기하는 남성들을 뒤로한 채, 일망의 의심도 없이 강한 군사력에 대한 욕망을 키워가고 있다. 강한 군사력을 포기하지 않는 민주화란 결국 타인의 절망 위에 놓여있다.
이 글에서는 탈군사화된 사회를 모색하면서 ‘모든’ 남성을 군사활동의 전담자로 내모는 징병제도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징병제도의 도입 및 유지과정, 이에 대한 저항의 흐름, 최근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군제도 개혁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나는 특정한 형태의 남성됨을 강제하는 징병제도가 군사영역에 대한 우위를 공고화하는 안보국가를 만들어 사회구성원 사이의 평등에 기초한 진정한 평화가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내려 한다.


군사화된 남성됨을 강제하는 병역의무

남한에서 강제징집제도가 시행된 것은 1949년 병역법 공포를 통해서다. 하지만 증대된 병력을 토대로 ‘북침’을 시도할 것을 우려한 미국이 남한에 군 10만 명 유지를 요구하였고, 이에 이승만 정권은 1950년 3월 징병제를 폐지하고 지원병제를 채택하였다(한홍구, 2003: 266).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1951년 징병제도는 다시 부활하였다. 그러나 징병제도 시행이 곧바로 ‘목숨을 담보한 숭고한 의무’로서의 병역이행을 강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량의 인명피해를 낳았던 한국전쟁의 경험, 생명과 신체훼손에 대한 두려움, 군대 내부의 폭력적이고 위계적인 문화는 남성들에게 군 복무 이행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한국전쟁 기간 동안 발생한 ‘국민방위군 사건’은 병역기피 태도를 단순히 도덕적 지탄의 문제로 볼 수 없음을 드러내준다. 1950년 12월 정부는 ‘국민방위군설치법’을 제정하고 남성 680,350명을 징집했는데 당시 징집된 국민방위군이 진주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상당수가 아사·동사·행방불명되었다. 반대로 고급장교들은 이들에게 지급되어야 할 거액의 국고금과 물자를 처분하여 착복하였고, 결국 이것이 문제가 되어 1951년 4월 30일 국민방위군 해체가 결정되었다. 이 사건은 군 입대가 시민권을 획득하는 길이 아니라 불의의 죽음을 당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노골적 병역기피 태도를 조장하였다(김동춘, 2006: 182).
박정희 군사정권은 군입영율 100%를 목표로 ‘병역비리 엄단 조치’를 시행하면서 병역이행에 대한 강제를 높여갔다. 군사독재 정권은 병영국가화 전략을 통해 산업현장에서든 군대에서든 모두가 ‘국가를 위해 싸우는’ 전사가 되기를 요구한 것이다. ‘국가방어’와 ‘국익’이 최우선인 사회문화 속에서 병역의무는 국가와 개인의 생존을 위해 피할 수 없는 ‘국민의 의무’로 자리매김 되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병역의무에 대한 도전은 반(反)국가적인 이적(利敵)행위로 여겨져 가시화될 수 없었다.
일례로 1960년대 베트남전쟁 파병을 이유로 군부대에서 탈영하였던 김동희는 일본으로 밀항한 뒤 투옥되었다가 일본정부가 망명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북한으로 건너갔다고 알려진다(와다 하루키, 1988). 남과 북이 적대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현실과 암혹했던 군사정권의 통치 하에서 군인 되기를 포기했던 남성들은 국외로 밀항하거나 감옥으로 끌려가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서구에서 병역은 근대국가 성립과정에서 생겨났기에 곧 시민권적 의무이자 권리와 동일하게 사고되었다. 반면 한국사회에서 병역은 이와 조금은 다른 의미로 시작되었다. 병역은 국가가 남성에게 일방적으로 강제한 의무이자 ‘희생’으로 여겨졌다. 병역은 회피하고 싶은 의무일 뿐 권리로 주장될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군인다움을 남성다움과 연결시키고, 병역을 피하려는 태도를 남성답지 못한 비겁한 행위로 언설화하며 강한 처벌을 주는 상황에서 징병제도는 저항이 불가능한 자연스러운 제도로 정착되었다.
무엇보다 강제징집제도가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병역과 노동시장의 연결이 크게 작용하였다. 군사정권은 징병제 확립을 위해 고용과정에서 ‘병역필’을 지원자격으로 명시하고, 군 복무를 경력으로 인정하여 더 높은 보수와 빠른 승진을 보장했으며, 군가산점제를 적용하여 ‘병역미필자’와 차등을 두었다. 병역이행은 노동시장에서의 실제적 보상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문승숙, 2007). 물론 이러한 보상은 성별, 성정체성, 학력, 장애, ‘혼혈’, 가족형태 등을 이유로 병역의무에서 배제된 ‘비국민’들에 대한 차별에 기초한 것이다.
큰 문제는 징병제도가 정착되면서 군사활동을 담당하는 성별화된 남성 역할이 정상적인 남성됨의 핵심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는데 있다. 흔히 이야기되는 ‘군대 가야 남자 된다’는 언설은 우스개 소리가 아니다. 이는 남성이라면 당연히 군인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군사화된 남성성을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징병제도의 정착이 낳은 다른 문제는 병역의무를 지닌 남성들이 국민국가 구성원의 상징적 그리고 실제적 대표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9·11 테러’ 이후의 미국사회를 분석한 아이리스 영(2003)은 ‘타자’, ‘외부’, ‘적’에 대한 두려움이 곧 보호자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하고, 보호자의 역할을 지배적 권위자의 위치에 놓는다고 지적한다. 보호와 피보호라는 성별화된 경계 속에서 피보호자들은 보호자인 남성들의 ‘희생’에 기꺼이 감사를 보내야 한다. 안보영역에서의 남성특권화는 가부장적인 권력의 기초가 되며, 여성의 종속은 바로 보호받는 존재라는 위치에서 기인한다.
이처럼 군사활동의 필요성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남성의 군인됨이 정상화된 사회에서 사회구성원 간의 평등을 논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른다. 국민국가 유지를 위한 보편적이고 상징적인 남성역할로 정당화되어왔던 ‘모든’ 남성의 군인됨이란, 결국 적대적 질서에 기초한 위계와 차별을 조장한다. ‘적’의 위협이 강조되는 근대화 과정에서 정착된 징병제도는 남성의 군인됨을 강제하였고, 이를 통해 ‘남성-보호자’, ‘여성-피보호자’라는 성별화된 구분을 강화하여 국민들 간의 위계를 양산하고 있다.


병역이행의 평등화를 요구하는 한국사회의 민주화

그러나 병역이행이 강제되는 한편에서는 사회 특권층의 병역비리 현상이 지속되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상류층의 병역면제가 용인되었고, 다양한 형태의 대체복무 운영으로 특권층의 ‘현역’ 기피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존재해왔다. 특히 호적제도와 병무행정자료가 전산화되지 않았던 1960-70년대까지는 병역기피에 대한 일괄적 단속이 불가능하였다(한홍구, 2003).
하지만 1987년 민주화 항쟁과 더불어 진행된 사회전반의 민주화와 문민정권의 등장은 특권층의 병역비리를 용납하기 어려운 것으로 만들었다. 1997년 이회창 대선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사건, 1999년 박노항 사건과 같은 연이은 병역비리 사건은 남성들의 분노를 자아내며 공공연하게 군 복무를 ‘보상 없는 희생’으로 언설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민주의식의 확장은 병역비리에 대한 민감성을 높여 계급과 지위에 관계없이 ‘모든’ 남성들이 병역을 평등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졌던 것이다. 때문에 정부는 관례화돼있던 병역비리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고, 군사적 동원의 공고화를 높이는 방식으로 실제적인 정책전환을 꾀하기 시작하였다.
병역이행에 대한 사회적 민감성이 높아진 가운데 연예인들 또한 주요한 감시 대상이 되었다. 가수 유승준의 경우 국적 포기를 통해 자동적으로 병역면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는 사회적 공감대를 이유로 들며 대법원조차 정당성을 인정하고 말았다. 2005년 5월 4일 한나라당 소속 홍준표 의원이 발의한 ‘국적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는데, 이 법안의 취지는 ‘병역기피’ 국적이탈을 막고 국적을 포기한 이들에게 각종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다. 개정된 국적법은 병역의무 이행의 형평성이라는 목적 하에 이중국적자의 경우 병역을 필한 자만이 국적포기가 가능하도록 하여, 개인의 국적 선택권을 제한하였다.
병역의무를 앞두었거나 이를 마친 남성들은 사이버 공간에 ‘병역비리 연예인 군대보내기’와 같은 사이트를 만들어 서로의 병역이행 여부를 감시하고, 선거기간에는 특정 후보가 병역을 필했는지, 무엇보다 ‘현역’으로 마쳤는지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면서 징병제도 유지의 자발적 수호자가 되어가고 있다.
서구 역사에서 근대적 징병제도는 계급, 인종, 지역 등에 따른 남성들 간의 차이를 동질화시키며 평등한 시민권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병역의무와 함께 참정권이 부여되었던 변화는 민주주의로의 이행이라는 혁명적인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반면 특권층의 병역비리가 만연했던 한국사회에서 병역의무가 ‘남성내부’의 평등권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변화되는 과정은 민주화 이후에서야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병역이행 형평성 추구의 문제는 그것이 성별위계에 기초해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도 현실적으로 ‘모든’ 남성이 병역을, 특히나 전투를 담당하는 ‘현역’ 복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평등한 병역의무라는 이데올로기와 달리 현실에서 병역이행의 방식은 동일하지 않다. 면제, 비리, ‘기피’, ‘거부’, 군 복무와 같이 병역의무 이행 여부를 둘러싼 차이도 있지만 공익근무,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 현역복무와 같은 병역이행의 내용에 따른 차이가 존재한다. 이 중에서 전투를 담당하는 ‘현역’ 군 복무가 국민국가 유지를 위한 가장 핵심적이며 가장 남성다운 것으로 의미화되어 남성들 사이의 위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동시에 형평성 논의는 군사활동을 담당하는 남성역할, 군인됨에 기초한 남성성을 개인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한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문제를 낳는다. 이런 분위기에서 근대화 과정에서 확장된 사회전반의 군사화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비정상적인 것으로 남겨진다. 결국 병역이행의 평등화 추구에만 몰두하는 것은, 징병제도가 강제해왔던 군사화된 남성성을 강화하고, 다시금 병역을 ‘신성한 국민의 의무’로 승격시키는 것 이상이 아니다. 탈(脫)군사화된 사회를 고민하지 않는 ‘민주화’란 과연 무엇인가 질문된다.


군인됨을 포기하는 남성들이 나타나다

징병제도가 보편적인 제도로 자리매김 되는 다른 한편에서 군인됨을 포기하는 남성들이 지속적으로 존재해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병역거부자들의 존재다.
한국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Conscientious Objection)는 일제시대 신사참배와 징병거부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진다. 당시 조선인은 병역의무가 없었지만 일본에서 여호와의 증인들이 병역거부로 체포되면서 조선, 대만, 중국 등지의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가 진행되었다. 38명의 조선인 여호와의 증인들이 전쟁반대 사상을 유포하고,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며 치안유지법 위반 및 불경죄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았고, 이중 5명이 옥사하였다(홍영일, 2002).
군사독재 정권시절부터 현재까지 13,000명이 넘는 병역거부자들이 법적 처벌을 받았다. 한 번의 처벌로 그치지 않은 경우도 많았고, 심지어는 처벌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 ‘종교적 소수자’인 이들은 신체적·경제적·인종적 소수자들과 달리 병역에서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혹한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군인됨을 포기하는 이들의 종교적 신념이 한국사회의 강한 군사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이단 낙인은 병역거부로 인해 가중되었고, 병역거부는 최근까지도 종교·사회적 이단의 비정치적인 행위로 인식되어왔다. 병역의무에 대한 ‘도전’은 이단 낙인을 통해 비가시화되고 희화화되었지만, 인권의식이 높아지고 새롭게 평화운동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사회적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국민’이라면 국가에 대한 강한 충성심을 입증해야 하고, 충성심의 좌표가 바로 군사 활동을 통해 ‘나라를 지키는’ 것인 군사화된 사회에서 병역거부자들의 존재는 뒤늦게야 ‘발견’되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면서 2001년 12월 오태양의 병역거부 공개 선언이 있었다. 그 뒤를 이어 반전(反戰)주의, 반(反)국가주의, 생태주의, 성정체성 등의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등장하여 최근까지 30여명의 남성들이 공개적으로 병역거부 입장을 밝혔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벌어진 미국의 대 아프가니스탄 전쟁, 대 이라크 전쟁과 점령, 그리고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등은 ‘정의로운 전쟁론’과 군대의 역할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게 하는 배경이 되었다.
사실 ‘외세’의 침략만을 받았을 뿐 침략전쟁에 동참한 적이 없다는 공식기억과 달리 한국정부는 국경 안과 밖의 전쟁에 동참해왔다. 베트남 전쟁, 1차 걸프 전쟁, 앙골라 내전, 소말리아 내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최근의 이라크 전쟁 등에 ‘평화’의 이름으로 군인을 파병했던 ‘침략’의 역사는 과잉된 안보의식에 기초하여 ‘국가방어’의 역사로 왜곡 서술되고 있다. 한편으로 반공을 위시로 국민국가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제주 4·3’,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 80년 광주 5·18의 경우처럼 국민국가 ‘내부’에서의 전쟁이 이어졌다.
그런데 병역거부자들은 ‘국가방어자’로 의미화되어온 군인의 역할이 ‘방어자’이자 동시에 ‘침략자’임을 자각하고, 전쟁수행자로서의 남성역할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제가 들어야 할 총은 누구를 겨누고 있습니까. 그 총이 슬픈 눈물을 간직한 사람들을 향한다면, 그 사람이 있음으로 인해서 한 사람이라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을 겨누고 있다면, 저는 총을 들 수 없습니다. 총이 향하고 있는 대상이 절대악이 아닌 한 저는 총을 들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절대악은 신화 속의 개념일 뿐입니다.
<김태훈의 병역거부 소견서 중 일부>

이처럼 병역거부자들은, 제국주의 전쟁을 목격하고 평화운동을 접하면서 ‘전쟁은 결국 죽고 죽임의 관계’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사회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주적’ 개념과 군대의 역할에 의문을 품는다. 이들은 지금껏 정상화되어 있는 남성의 군인됨이 전쟁 시기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국가를 방어한다고 의미화되는 군사 활동이 국경을 넘어서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질문하고 있다.
병역거부자들의 공개적인 등장은, ‘의무를 거부할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가, 다른 무엇도 아닌 ‘신성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사회적 저항에 직면하였다. 공개적 병역거부 행위는 ‘자기만 희생하지 않겠다’는 이기적인 것이며, 군사활동 담당자로서의 보편화된 남성됨을 피하려는 비겁하고, 비애국적일뿐더러 남성답지 못한 것이라는 지탄을 받았다. 이러한 분노와 저항의 이면에는 ‘국가방어자’로서의 남성역할을 강조하는 국가안보 논리와 국가에 대한 의무가 최우선이라는 강한 국가주의가 녹아있다. 동시에 군에 끌려가는 남성들의 징집에 대한 피해의식과 억울한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성급한 분노와 비난을 보내기엔 이들이 제기하는 질문이 너무도 중요하다.

‘자매애’보다는 ‘전우애’를, ‘상생’과 ‘공생’보다는 상멸과 공멸의 결말을 가진 군사주의와 남성우월주의적인 군대를, 제 안의 겁 많고 어리버리한 여전사는 온몸으로 거부합니다.
<유정민석의 병역거부 소견서 중 일부>

사람들이 ‘군대’라는 곳에 가야 되는 상황은 얼마나 당연할 수 있을까요?!
‘남자’라서 현실적으로 ‘군대’에 가야 할 수 밖에 없다고 하면서도, 정작
‘군대’가서는 이상적인 ‘남자’가 되어 돌아오라고 하는 현실은 또 어떻게 가능한가요?!
‘군대’에 갔다 온 ‘남자’는 ‘사람’되었다고도 하지만, 갔다 오지 않은 ‘사람’은
‘남자’답지 못하거나 뭔가 부족하다하는 순간들은 다시 왜 만들어지는 걸까요?!
<타랑의 병역거부 소견서 중 일부>

위 소견서에서처럼 병역거부자들은, 군사화된 사회에서 ‘남성이 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성찰적 물음을 제기한다. ‘적’과 ‘아(我)’라는 적대적 이분법 속에서는 ‘우리’의 안위를 이유로 타인을 향한 폭력이 쉽게 정당화된다. 이는 나와 연결된 타인을 향한 절멸의 행위마저도 가능하게 만든다. 병역거부자들은 때론 살생마저도 감행해야 하는 군인됨을, 그리고 그에 기초한 남성됨을 더 이상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없고, 받아들여서도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군사활동을 수행하지 않겠다는 남성들의 등장, 이들의 등장으로 제기된 군인됨에 기초한 남성다움에 대한 질문은 민주화된 사회에서 새롭게 논의되어야 할 문제다. 군인됨을 포기하는 남성들의 등장으로 가시화된 병역이행의 의지와 그 의미를 둘러싼 ‘남성내부’의 차이는 쉽게 봉합하려하기 보다 사회전반으로 확장되어 논쟁되어야 한다.


병역제도 개선방안은 결국 군사적 동원을 공고화할 뿐

노무현 정부는 2007년 2월 6일 ‘국가인적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병역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였다. 여기에는  군 복무 개선안과 사회복무제도 시행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있다. 군 복무 개선안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군 복무 선호체계 구축 및 전투력 강화’를 위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그 기간을 6개월 단축하여 현 24개월에서 1년 6개월로 하며, 유급지원병제 도입하고, ‘군 복무 만족도 제고’를 위해 복무기간 동안 ‘자기계발’ 여건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군 복무 개선안은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삶의 조건에 발맞춘 변화의 흐름이기도 하다. 과거와 달리 병역이행에 대한 노동시장에서의 가시적 보상이 불가능해지고, 삶의 조건이 불안정한 현실에서 남성들은 징집에 대한 부담감을 높여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부담감은 미처 징병제도에 대한 집단적 저항으로 이어지고 못한 것이 현실이다. 정부 개선안은 독일의 9개월, 스위스 9개월, 브라질 12개월 등 징병제를 시행하는 다른 국가의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복무기간 단축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할 만하다. 하지만 복무기간을 낮추고, 복무 여건을 개선하여 군 복무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겠다는 ‘긍정적’ 취지는 결과적으로, 정부도 스스로 밝히고 있듯, 군사적 동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며, 현재 수준 이상의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병역제도 개선안에서 정부는 대체복무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사회복무제도를 실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현재의 전·의경, 경비교도, 의무소방원 등의 전환복무를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며, 산업기능요원은 2012년 이후 완전 폐지, 공익근무요원은 단계적 감축을 통해 2011년 이후에는 완전 폐지하고, 공익근무요원 중 일부 사회서비스 분야는 사회복무 체계로 편입시킨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렇게 대체복무제도를 폐지하는 한편 ‘예외 없는 병역이행’을 목표로 사회복무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사회복무제 실행 계획에 있어 무엇보다 눈에 띄는 변화는 병역의무 이행의 대상자가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병역이행의 형평성을 목적으로 현 병역처분 기준을 조정하여 ‘손가락 장애나 인공수정체안(眼) 등 신체 일부에 결함이 있으나 사회활동이 가능한 자’에 대해서도 사회복무 의무를 부과하겠다고 한다. 이를 통해 사회복무 대상에는 현행 병역처분 4급자(‘보충역’)와 병역면제 대상이었던 5급자(‘제 2국민역’)가 포함된다. 동시에 ‘고아’, ‘혼혈인’, 귀화자, 여성도 본인 희망 시 사회복무를 부여하겠다고 이야기한다.
사회복무제 추진의 첫 번째 목적으로 ‘예외 없는 병역이행’을 손꼽고 있는데서 드러나듯이, 결국 사회복무제도의 추진 배경은 군 현대와 군 복무기간 단축을 통해 양산되는 ‘잉여자원’을 사회복지 영역에 싼값에 활용하고, 병역대상을 확대하여 징병제 시행에 있어 ‘잡음’을 없애어 총동원 체제를 공고화하겠다는 데 있다. 이례적으로 언급된 ‘고아, 혼혈인, 귀화자, 여성’들은 이러한 흐름에 들러리로 동원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예외 없는 병역이행’을 이유로 병역의무 대상자가 확대되어야만 하는가? 여전히 국가에 대한 의무 이행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일차적 존재 자격이 되어야 하는가? 앞서 지적한 것처럼, 군사영역의 우위와 군사활동의 의미를 돌아보지 않은 채 진행되는 병역이행의 형평성 추구는 징병제도가 강제해왔던 군사화된 남성성을 강화할뿐더러 다시금 병역을 보편적이고 ‘신성한 국민의 의무’로 위치시키는 것이다. 더군다나 군사적 동원을 공고화하기 위해 진행되는 사회복무제는, ‘현역’과 ‘비(非)현역’이라는 병역이행 대상자들 사이의 위계와 병역의무에서 배제된 ‘비국민’에 대한 차별을 온존시킨다.
사회복무제는 군사화된 근대화 과정에서 폄하되어왔던 사회복지 영역을 재평가하면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상 속에서 제기될 때 나름의 의미를 발휘할 것이지, 지금처럼 징병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징병제도 유지와 군사력 강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현 사회복무제 시행방침은, 사회복지 영역에 대한 폄하를 가중시킬뿐더러 군인됨과 ‘국민됨’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가로막는다.


군사화된 남성됨에 대한 물음을 봉합하는 사회복무제도

‘병역제도 개선방안’이 발표된 뒤 국방부는 2007년 9월 18일, 종교적 사유 등에 의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발표하였다. 국방부는 ‘병역의무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앞으로 시행될 사회복무제도에 병역거부자를 복무 대상자에 포함하겠다고 한다.
‘병역이행 관련 소수자의 사회복무제 편입추진’이라는 보도 자료에 따르면, 병역거부자의 복무분야는 ‘24시간 근접보호가 필요한 치매노인이나 중증장애인 수발’ 등 사회복무 분야 중에서도 ‘난이도’가 가장 높은 분야로 한정된다. 복무분야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내용을 보면, ‘장애자 목욕 수발 등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분야’, ‘치매노인 수발 등 정신적·심리적 불편을 수반하는 분야’, ‘전염병 감염, 안전사고 등이 우려되는 위험도가 높은 분야’다. 복무방식은 출·퇴근 없이 복무시설에서 합숙을 해야 하며, 복무기간은 현역병의 2배 수준이다.
이처럼 복무내용과 방식 그리고 기간 모두에서 병역거부자에 대한 징벌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특히 현역병 보다 2배 긴 복무기간은 유엔인권위원회의 결의안 기준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유엔인권위원회는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 복무기간의 1.5배 이상인 경우에는 사실상 징벌과 동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물론 대체복무 수용이라는 변화는 그간 법적 처벌의 대상일 뿐이었던 병역거부자들을 ‘범죄 집단’이 아닌 사회구성원으로 ‘승인’한다는 점에서 일보진전을 이룬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고작 법적 처벌을 면하는 수준으로 이루어지는 대체복무로의 편입은, 이 사회가 군사활동을 수행하지 않겠다는 남성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보여준다. 정부안에서처럼 그 내용이 아무리 ‘전염병 감염, 안전사고 등이 우려되는 위험도가 높은 분야’라 할지라도 ‘현역’이 아닌 의무이행은 군사활동을 담당하는 ‘현역’과 동등한 것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때문에 보다 ‘난이도’가 높고, 보다 긴 기간의 복무규정은 당연한 수순으로 사고되는 것이다.
이영환(2007)은 이처럼 징벌적 성격의 사회복무제도를 강행하는 것은, 병역거부자들을 범죄자로 보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며, 그러한 사고에 기초하여 병역거부자들의 주된 복무 장소를 사회복지영역으로 상정하는 것은 모순적이라 지적한다. 사회복지영역은 사회구성원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영역이고, 일차적으로 사회적 취약계층의 삶을 보호하는 영역인데, 그러한 삶터를 자칫 징벌의 장소로 오도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징벌적 시각을 불식하면서 병역거부를 사회복무의 정당한 근거로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국방부 발표안은 징벌적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이지만, 병역거부자들을 기존 제도에 편입시키면서 이들의 등장으로 제기된 물음을 봉합한다는 점에서 큰 안타까움을 낳는다. 군사활동의 의미란 무엇인지, 그에 기초한 남성됨이 정상화되어야 하는지, 군사영역의 우위가 지속되어야 하는지와 같은 병역거부자들의 등장으로 촉발된 질문들에 대해 진지하게 마주하지 못하고 있다. 논의의 장이 봉합된 채 ‘현역’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적 돌봄에 대한 고민 없이 시행되는 사회복무제도라는 것에 편입될 예정인 것이다. 현 병역면제 대상자와 병역거부자들을 징병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사회복무에 담당하게 하는 것은, 사회적 돌봄의 문제를 여전히 군사영역의 하위의 것으로 바라보는 것 이상이 아니다. 군인됨을 포기하는 남성들이 제기한 성찰적 질문을 받아들이고, 사회적 돌봄의 가치를 재평가하면서 ‘병역제도 개선방안’은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이젠 탈(脫)군사화된 사회를 상상할 때

임상수 감독의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서 잘 보여주듯이 광화문 한복판에 서있는 이순신 동상은 군사독재 정권의 대표적 상징이다. 역설적이게도 군사독재의 잔재인 이순신 동상은 민주화를 이뤘다는 지금도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광화문에 자리한 이순신 동상이 상징하듯 한국사회는 여전히 강한 군사력에 기초한 강한 나라에 대한 열망을 키우는 중이다. 강한 군사력이란 누구의 욕망이며, 어떠한 결과를 낳는 것인가?
한국사회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군사활동을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위한 절대적인 것으로 위치시켰고, 남성의 군인됨을 강제하는 징병제도를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냉전의 종식과 남북 간 화해무드가 조정된 현실의 변화 앞에서도 ‘모든’ 남성이 군인이 되어야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병역이행의 형평성을 이유로 군사적 동원을 공고화하고, 사회구성원을 ‘의무에 기초한 국민’으로 호명하고 있다. 더욱이 국가가 부담해야 할 사회복지 문제를 징집 대상자를 확대하는 사회복무제 시행을 통해 편의적으로 해결하려 한다. 사회적 돌봄을 ‘국민’을 동원하여 해결할 행정적 편의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다.
사회구성원 사이의 진정한 평등도 국경 안팎의 평화로운 연대도 군사영역이 우위를 갖는 남성화된 안보국가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희망일 뿐이다. 강한 군사력에 대한 열망을 키우며 사회적 돌봄의 문제를 뒤편으로 밀어두기보다 탈(脫)군사화된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이다. 상상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만족시키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당연하게 느끼는 것을 멈추게 하거나, 생각이나 감정의 흐름을 전환시켜 버리기 때문에 대단하고 힘이 있는 것이다(김은실, 2005). 군사적 동원을 정당화하는 적대적 사고가 아닌 서로 연결된 이질적인 존재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를 상상할 때 탈(脫)군사화된 민주주의도 가능할지 모른다.



참고문헌

김동춘(2006), “한국의 분단국가 형성과 시민권: 한국전쟁, 초기 안보국가 하에서 ‘국민 됨’과 시민권”, 『경제와 사회』, 통권 제70호, 한국산업사회학회.
김은실(2005), “‘평화=고요’라고?”, 시사저널 833호.
문승숙(2007),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 또 하나의 문화.
와다 하루키(1988), “한·일 연대운동의 사상과 궤적”, 『창작과 비평』, 61호, 창비.
이영환(2007), “사회복지 측면에서 본 사회복무제: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하여”, 병역거부 대체복무 수용에 관한 공청회 발제문(2007. 10. 17).
한홍구(2003), 『대한민국史』, 한겨레신문사.
홍영일(2002), “양심적 병역거부와 여호와의 증인”, 『양심적 병역거부』, 사람생각
Young, Iris Marion, 2003, "The logic of masculinist protection: Reflections on the current Security State", Signs; Autumn 2003, vol. 29, no. 1.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
http://www.withoutwar.org/



* 이 글은 <환경과 생명> 겨울호에 실리는 글니다.

* 회원이신 강유인화님은 '평화바닥' 등에서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원문] http://peaceground.org/zeroboard/zboard.php?id=ground&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