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시선

[하운의 팔레스타인 여행2] 소파싸움

평화바닥 2008. 1. 17. 13:30

소파싸움


김하운




가자지구는 봉쇄되었고 공격을 받고 있다.
어제는 열 몇 명이, 오늘은 일곱명이 죽었다고, 그렇게 사람의 삶이 아닌 숫자를 듣고 있다.
낯선 사람의 죽음에 도덕적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건, 마냥 쉽지만은 않은 일이긴 하다. 누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지금 당신의 눈 앞에 빨간 버튼이 있고, 그 버튼을 누른다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이름도 생소한 어떤 나라에서 이미 삶을 다 해가는 아주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가 한 명 죽을 거라고. 대신 그 버튼을 누르면 당신에게는 백 만원의, 아니 너무 적은가, 일억 원의 십억 원의 돈이 떨어질 거라고. 당신은 그 버튼을 누를까, 누르지 않을까.
그 망설임이나 결단의 정도만큼, 사람의 도덕이란 얇은 것이라고, 누가 그랬었나, 하여간 대단한 인물이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서 내 식대로 얘기해봤다.

팔레스타인은 먼 나라다.
어제는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에서 열 몇 명이, 오늘은 일곱명이 죽었다.
가자지구에는 무함마드 조하라는 팔레스타인 화가가 살고 있다.
조하는 서른 살의, 서늘하게 잘 생긴 청년이다. 우리는 전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불법으로 점령한 지 40년 되는 날, 인사동 길거리에서 팔레스타인 그림들과, 사진, 시 등을 전시해놓은 적이 있었다. 그 중에는 조하의 그림들도 있었는데, 아이가 그린 것 같은 투박하면서도 다양한 색의 그림들이었다. 전시회를 준비하던 우리들은 조하의 그림을 좋아했다. 몇 년 전, 지금 수와 내가 묵고 있는 카탄 파운데이션(A.M. Qattan Foundation)에서 조하의 첫 전시회가 있던 날, 건물 안팎에는 빨랫줄이 얼기설기 내걸렸고, 빨랫줄들에 조하의 그림들이 인형과 티셔츠들과 함께 주렁주렁 널렸다. 개구장이 같은 서른 살의 서늘한 청년 조하. 조하는 이 전시회 이후 유명해졌다.



<2007년 6월 5일 팔레스타인 점령 40년, 인사동. 무함마드 조하의 그림들>


나는 조하를 만나고 싶다. 주소를 아는 건 어렵지 않으니, 가자에 가서 집을 찾은 후 문을 두드리는 거다. 그리고는 왠지 마음에 들었던, 눈이 짝짝이인 소녀의 그림을 사겠다고 말해야지. 난 사람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그림이 마음에 들었으니 그림 얘기를 하다보면 차도 한 잔 같이 마실테고, 그럼 친해진다는 것도 평소보다는 좀 쉬워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가자지구는 봉쇄되었고, 공격을 받고 있고, 어제는 열 몇 명이 오늘은 일곱명이 죽었으며, 조하는 가자에 살고 있다.

인사동의 거리 전시회에는, 조하의 그림 옆에 자카리아 무함마드의 시도 있었다. 말의 재갈에 관한 시인데, 시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본성을 가진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시들 중 하나이다.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팔레스타인의 시인이다. 자카리아 아저씨에게는 독일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아함마드라는 멋진 아들이 있는데, 며칠 전, 아함마드가 팔레스타인에 도착해서 라말라의 한 바에서 재즈 연주를 하던 날, 말의 재갈에 대해 시를 썼던 팔레스타인의 자카리아 시인은 귀여운 아버지로 변신해서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2007년 6월 5일 팔레스타인 점령 40년, 인사동. 자카리아 무함마드의 시. 그리고 아들의 연주회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자카리아 무함마드 아저씨.>


시인이 됐다가 귀여운 아버지가 됐다가 하는 그 자카리아 아저씨와 그의 아내 살마 아줌마가 나와 수를 데리고 라말라 외곽에 나들이를 간 적이 있는데, 거기에는 언덕들과, 올리브 나무들과, 올망졸망한 마을들과, 선인장들이 있었다. 아직 겨울비가 내리지 않아 언덕들이 푸르게 덮이지는 않았지만, 온갖 먹을 수 있는 풀들이 싹을 피우고 있었고, 돌로 된 언덕과 담에는 선인장이 수북했다. 참나무도 있었는데, 나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덤불이 되어 돌벽에 붙어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스라엘 정착촌도 있었다. 붉은 지붕에, 복제해 놓은 듯 똑같이 생긴 집들이 한 곳을 바라보며 주변 광경과 어울리지 않게 언덕을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자카리아 아저씨와 살마 아줌마가 나들이를 다니곤 했던 길은, 커다란 돌들로 막혀있었다. 정착촌의 이스라엘 주민들 전용 길이 된 것이다.  
이스라엘 정착촌이라는 사실만으로 정 떨어지게 보인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자연을 이해하지 못하고, 총을 들고 세운 집들이어서 그런 것이다. 그런 그들의 뿌리들은 그들의 정착촌에서 우러나와, 주변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빨간 지붕의 복제품 덩어리가 되었다. 그런 집들은 집들이 아니고, 그런 마을은 마을이 될 수 없다.
아직 제대로 된 건물이 들어서지 못한 정착촌 터에는 컨테이너 같은 임시 건물들이 놓여있었고, 이스라엘 국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언덕을 하나 선택해서, 컨테이너를 들여놓고는, 아니 이건 그냥 컨테이너일 뿐이라고 말하며 멀리서는 평화협정을 맺고, 그 사이에 곧 그 컨테이너들은 또다시 정떨어지는 복제품 같은 건물들이 되어, 한 곳을 바라보며, 자기들만의 길도 만들고, 밤마다 정착촌 근방에만 켜지는 자기들만의 오렌지 색 가로등도 갖고, 그렇게 될 것이다.

<라말라 외곽의 이스라엘 정착촌. 아래 길은 돌로 막혀 있다.>

더욱이 이 이스라엘 정착촌들이 바로 근처의 팔레스타인 마을들의 이름을 똑같이 따서 짓는다고 얘기한다면, 조금 소름이 돋지 않을까. 그건 사실이다. 그 팔레스타인 마을의 이름들은 아랍어가 아니라 성경에도 나와 있는 옛날 옛적의 이름들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정착촌의 이름으로서 전혀 하자가 없다면서, 그렇게 그들은 슬금슬금, 아니 꾸역꾸역, 팔레스타인의 오랜 역사와 삶과 그 이름들을 복제해서는 훔쳐가고 있다. 언젠가는, 자신들이 처음부터 그곳에서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처럼,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그 오랜 세월과 삶과 기억들을 깨끗하게 자기네 것으로 대체하려는 무서운 도둑질.
키파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자기가 역사를 훔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은 역사가 그들을 훔치고 있는 것이라고. 이 세상 어디에도 이곳처럼, 점령자가 점령당한 자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들이 점령한 자들의 역사와 문화에 영향을 받는 곳이 없다는, 그런 말을 했다.

키파는 진지할 뿐 아니라 유머가 가득한 유쾌한 시인이다. 카탄 게스트 하우스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키파네 집에 택시를 타고 가면, 키파의 고양이들이 부엌에서 밥달라고 야옹야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와 수와 키파는, 불을 어둡게 하고, 음악을 틀어놓고, 팔레스타인의 소주라고도 할 수 있는 아락을 마시면서, 곁에 있는 고양이들의 가르랑을 느끼며 웃고 떠들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곤 고양이들과 함께, 고양이들처럼, 난로가 있는 커다란 방에서 각자 잠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다리 아래에, 머리 위에, 품 안에 고양이들이 가득하다.



<키파의 집. 자고 있는 키파를 고양이들이 덮고 있다. 사진을 찍자 다 뛰쳐나가고 남은 고양이들만 저 정도다.>


키파네 집에 놀러갔을 때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키파가 게스트 하우스에 놀러 올 때면 문제가 생긴다. 게스트 하우스에는 세 명이 앉을 수 있는 소파가 있는데, 하나는 두사람 용으로 좀 길쭉하고, 다른 하나는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우아한 크기이다.
그 길쭉한 두사람 용의 소파가 문제가 된다.
두사람 용이긴 하지만 눕자고 한다면 한사람으로도 꽉 차버린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나는 그 소파에 누워있기를 좋아하는데, 키파도 그 소파에 누워있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첫 날은 내가 사랑하는 소파를 차지했고 아무 생각도 없이 편히 누울 수 있었다. 두 번째는 키파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우리는 소파를 두고 수 앞에서 한 시간 가량을 싸워댔지만, 키파가 집에 가버리는 바람에 결국 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리고 세 번째인 어느 날 우리는 또 소파를 두고 마주하게 되었다. 수는 마음 편한 구경꾼이 되어 처음부터 웃고 있었다.
이건 내가 무지 좋아하는 소파야, 라고 내가 말했고, 이건 내가 무지 좋아하는 소파이기도 해, 라고 키파가 대답했다. 키파는 분명 합리적으로 자태를 바꾸기로 작정한 듯 했다. 이렇게 말했으니까.

"소파를 달라는 게 아니라, 나누자는 거야. 우린 모두 편안하게 소파에 나눠 앉을 수 있어.”

나는 그렇군, 하고 생각하며 소파를 나누었고, 우리는 소파에 우겨져 기대보았다. 그렇게 소파를 두고 마주했던 세 번째 날에 카탄 게스트 하우스에서 모두가 만족스러워졌다.
우리는 커피 또는 차 한잔씩을 앞에 두고 얘기하는 것으로 많은 것이 이미 만족스러운 사람들이고 그런 관계이기 때문에, 사실 소파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바깥 세상은 별로 그렇지 않은 듯 하다.

한발자국 앞에 두고도 아무도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는 곳에 사는 무함마드 조하.
몇 년전에는 자카리아 아저씨와 살마 아줌마가 나들이를 다니곤 했던, 그런데 이제는 돌에 막혀 있는, 길 아닌 길.
고양이 같은 키파에게 웅크릴 수는 있으되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는 신분증을 갖게 한 이상한 규칙들.

여기 사람들과 얽힌 일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생각들이 자꾸 꼬리를 물어서 점점 길어져버리기 때문에 다시 빨간 버튼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나는 실제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먼 나라의 노인의 죽음을 ‘즉각’ 느끼고서 ‘당장’ 빨간 버튼을 마련한 사람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칠 위인은 못 된다. 분명, 추상적인 문장으로만 느껴지는 ‘먼 나라 한 노인의 죽음’과, 당장 지금 갖고 싶었던 멋진 오토바이를 살 수 있는, 현실감이 충만한 현금 사이에서, 잠시나마 흩어진 판단력의 조각들이 자리를 찾을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말하자면, 망설일 거라는 얘기다.
그래서 난 깊이 있는 철학자나 예술가나 종교인이나, 그러니까 위인이 되지는 못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난 그저 문장일 뿐일 수만은 없는 그 ‘먼 나라 한 노인의 죽음’에 실려 있는 무게감을 곧 되찾을테고, 빨간 버튼을 절대 누르지 않을 것이며, 그 빨간 버튼을 마련한 사람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를 것이다.
나는 일반적인,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일반적인, 보통 사람들이라면 무릇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쩌다 팔레스타인에 오게 되어 팔레스타인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게 또 다른 것이어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다 파겠다고 하는 대운하 같은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저 평범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해야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소파는 어찌됐냐하면, 좀 복잡하다. 소파를 같이 갖자고 정다운 결론을 내리기는 했으나, 실제로 그 소파에 두 사람이 편히 자리잡기란 어려운 일이다. 키파는 내가 혼자 소파에서 스르르 잠들 수 있도록 슬쩍 비켜준 대신, 우아한 일인용 소파에 몸을 구겨넣고 앉아서 편안하다며 내게 시위를 하고 있으니, 아마도 이제 난 안 주겠다고 싸움 같은 유희를 놀았던 그 소파에 키파를 앉히기 위해서 또다시 새로운 싸움을 해야할 판이다.



<카탄 파운데이션(A.M. Qattan Foundation)의 게스트 하우스. 바로 그 소파.>



* 후원회원이신 김하운님은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원문 : http://peaceground.org/zeroboard/zboard.php?id=ground&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