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시선

[물꽃]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그 과거를 다시 경험하도록 ...

평화바닥 2010. 1. 25. 11:30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그 과거를 다시 경험하도록 단죄 받는다”
― 한국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결정을 바라보며

물꽃



  
(다하우 나치 강제수용소 전시관 앞의 "Nie Wieder" _ 잊지 않아야 할 과거를 새겨 넣었다.)


지난달 한국 정부는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던 한국 군대의 재파병을 위한 <국군 부대의 아프가니스탄 파병 동의안>을 제출했다. 한나라당은 아프가니스탄 재파병은 ‘국익을 위한 결정’이라며 파병 동의안 통과 의사를 밝혔다. 전쟁에 동참하는 파병을 당당하게 ‘국익을 위한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한나라당 대변인의 목소리가 머리를 쳤다. 얼마 전 읽은 책에 나온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그 과거를 다시 경험하도록 단죄 받는다”는 말이 불현듯 떠올라 나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마치 종교 예언서에 나올 법한 이 말은 독일 뮌헨 근처 다하우란 마을에 세워진 나치 강제수용소를 복원한 전시관 앞에 쓰여 있는 말이라고 한다. 과거를 제대로 이해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다시 그 과거를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는, 섬뜩할 만큼 날카로운 예언이다.

한국 정부는 2002년 아프가니스탄에 한국군 파병을 단행했고, 2006년 말 국회에 파병연장을 위한 ‘국군부대의 대테러전쟁 파견연장 동의안’을 제출하면서 “유엔 회원국으로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도적 차원의 구호 및 진료활동을 지원하는 국제적 연대(連帶)에 동참함으로써 세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함은 물론, 한·미 동맹관계의 공고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며 파병 이유를 설명했었다. 하지만 명분 없는 전쟁에 대한 여론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고 파병의 대가로 벌어진 윤장호 장병의 죽음, 그리고 21명의 한국인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되는 등 여러 사건들이 벌어졌다. 그리고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던 한국군은 ‘성공적인 임무 종결’을 외치며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했다. 하지만 2009년 12월 현재, 다시 한국 정부는 ‘국익’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재파병하겠다고 한다.

현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정당화하며 내세우는 세계 평화와 한미 동맹, 그리고 국익 주장은 사실 우려먹을 만큼 우려먹어 이미 너덜너덜해진 주장들이다. 35년 전 미국의 베트남 침략 전쟁에 공조하면서 박정희 정부가 총인원 32만의 한국 군대를 베트남에 파병했을 때도 한국 정부는 베트남 파병이 ‘세계 평화’를 위한 것이라 주장했고, 한국 영토 바깥에서 벌어진 수많은 베트남인의 목숨을 담보로 얻은 그 핏빛 경제적 특수를 ‘국익’이라 칭했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벌어졌을 때도 한국 정부는 ‘세계 평화’와 ‘국익’을 외치며 파병에 동의했었다.

사실 베트남 사람들에게 베트남 전쟁은 잘못된 이름이다. 그들에게 그 전쟁은 ‘미국의 침략 전쟁’이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잘못된 이름이다. 그것은 ‘미국의 침략 전쟁’이다. 이라크 전쟁도 마찬가지다. 이라크인들에게 그것은 미국의 침략 전쟁일 뿐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월남 패망’이 베트남 사람들에게 ‘해방’이듯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사람들에게 ‘미군과 동맹국들의 철군’은 ‘해방’일 수 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미국의 침략 전쟁으로 얼마나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지를 잊었고, 한미 동맹을 앞세운 국가의 명령 속에서 얼마나 많은 한국 군인들이 죽어야 했는지도 잊었다. 2001년부터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는 것도 잊고, 한국군 파병으로 2007년 윤장호 병장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도 잊었다. 이와 같은 우리의 망각이, 우리의 기억 없음이 다시금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고 있다.

“전쟁 중의 일은 전쟁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 않았다. 전쟁은 그들의 현재의 삶을 규정하고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전쟁 중의 기억을 되살리고 발췌하는 것만으로는 전쟁이 인간에게 미치는 총체적인 영향을 이해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전후로 이어지는 삶의 이야기를 통해야만 전쟁과 전쟁의 기억이 한 인간의 삶과 영혼 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67쪽)

우리는 파병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마치 아이들이 병영 체험 캠프를 가듯 짧은 기간 한 지역에 군대를 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파병은 서로가 죽고 죽이는 전쟁에 동참하는 것이며 그것이 그 전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그 사회의 삶을 황폐화시키는 것이라는 걸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그리고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이 평생 전쟁의 기억을 고통 속에서 안고 살아간다는 것도 너무 쉽게 간과한다. 그래서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과 살아남은 사람들, 또한 국가의 명령으로 명분 없는 전쟁에 파병된 군인들이 겪게 되는,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는 고통에도 그렇게 손쉽게 눈을 감아 버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징집에서 전투까지 국가는 개인을 점령하고 지배한다. 개인의 의지와 가치판단은 무력해지고 군대 또는 국가의 의지가 나를 움직인다. 그러나 전쟁이 끝났을 때, 몸의 기억은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몸이 기억해내는 혼란과 절망은 고스란히 개인의 몫이 되고, 국가는 이들의 기억 중에 필요한 부분만 선별하여 재생산한다.”
(같은 책,  219쪽)

‘CNN 뉴스’에 따르면 2008년에 이미 6만 명의 미군이 이라크 전쟁 파병 후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오마이뉴스’에서 보도한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고유경 활동가와의 인터뷰를 보면 이라크에 파병된 일본 자위대원 중 46명이 자살을 했는데 그 원인은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로 추정된다고 한다. 파병된 군인들은 왜 이런 고통에 직면해야 하는가? 이들을 전쟁으로 몰아넣은 것은 누구인가? 12월 11일자 ‘매일경제신문’ 인터넷판 기사 타이틀은 <아프간 파병군, ‘짭잘?’>이었다. 마치 아프가니스탄에 가기만 하면 개별 사병들이 월급 인상 등의 수많은 경제적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광고하는 기사였다. 전투에 참여하게 되면 파병기간의 세 배에 해당하는 연금이 제공된다는 ‘짭잘한’ 금전적 가치에 대한 내용도 덧붙여 있었다. 기사 속에는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이 겪게 될 수많은 아픔에 대한 이야기는 빠져 있었다. 국가의 명령 속에서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게 될 개별 군인들이 겪어야 할 전쟁의 상흔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그리고 그 국가의 명령으로 죽어갈 아프가니스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이 파병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침략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점령지에 살고 있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이 전쟁과 파병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전쟁 수행으로 획득한 이윤을 위해 존재하는 군산복합체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전쟁과 점령을 통해 전 세계 패권을 유지해 나가고자 하는 미국 지도층인가? 그도 아니면 패권에 기생하며, 그 콩고물에 기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한국의 기득권들인가? 그런데 왜, 도대체 왜, 그 피해를 아프가니스탄에서 살아가고 있던 평범한 사람들이 받아야 하는가? 왜 이들이 매일매일을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가?

1960년대 후반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전 세계적인 반전 흐름 속에서 한국인들은 긴 침묵을 지켰었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구차하게라도 그때 우리는 독재정권하에서 있었기 때문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조건에 있었다고 치자.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떤가? 지금 우리에겐 구차하게라도 내보일 그 어떤 변명도 남아 있지 않다. 이제라도 과거를 제대로 돌아보고, 또 다른 실수를 하지 않도록,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핏빛 콩고물을 기대하며 명분 없는 침략 전쟁에 동참하지 않도록,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재파병을 막아야 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그 과거를 다시 경험하도록 단죄 받는다”는 그 뼈아픈 예언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그렇게 말이다.



* 평화바닥 회원인 물꽃님은 <버마 어린이 교육을 생각하는 사람들>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도서출판 그린비>의 블로그(http://greenbee.co.kr/blog/)에 포스팅된 것입니다. http://greenbee.co.kr/blog/861?category=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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